1등 진로란 ‘부모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미국무부 교환학생 참가후기
[이민지] 인생 최고의 해
인생 최고의 해

Burlington High School (CO) 미국교환
이민지
 

모두 꿈은 꾸지만 몇몇은 포기하고 몇몇은 그들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환학생으로써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미국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엄마에게 나를 보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미국에 올수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시험에 합격하게 공부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렇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적이 없었기에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끈기와 열정을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 하였다.
 
민지를 환영하는 호스트 가족 :)
 
호스트 가족을 처음으로 만날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수가 없을 정도로 신이 나는 동시에 떨리며, 긴장이 되었다. 만나기 바로 직전 계단을 한 걸음 오를 수록 긴장감도 같이 올랐다. 긴장감이 최고조를 찍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는 호스트 가족을 보자 팽팽하던 실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가족을 만났을때 영화처럼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들만 집중되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최고의 가족을 만났고 최고의 1년을 보낼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족 모두가 나처럼 신나했다고 나중에 호스트 엄마가 말해주었다. 한국에서부터 형제들이 많았어서인지 4명의 형제자메들이 있는 가족에 적응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엄청 걱정했던 것 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내 호스트 부모님들은 나를 친자식처럼 대해주고 잘 챙겨주셔서 나는 정말 감사하다. 모든 교환학생들이 나의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부모님들이 나중에 일본이나 한국에 나를 보러 방문하기로 약속까지 하셨다.
 

겨울 댄스와 여름 댄스의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조명과 웅장하고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에 맞혀 모두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추었다. 처음에는 그 분위기와 환경에 익숙치 않고 어색해서 머뭇거렸지만 친구들이 둠칫둠칫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해 분위기에 떠밀려 나도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음악에 몸을 맡겼다. 모든 친구들이 음악속에 하나가 되었고 정말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에는 이런 기회들이 별로 없어서인지 더 즐길 수 있어 최고의 경험들 중 하나였다. 프롬도 너무나 기대되고 그때는 망설임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일인 크리스마스를 야자수와 바다로 둘러싸인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빌린 집이 바다 위었어서 언제나 발을 담글 수 있는 곳 말이다. 나의 첫 미국에서의 따뜻한 크리스마스였다. 시원한 파도와 따뜻한 아침 햇살을 마음껏 받으며 모두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많이 주고받기에 서로 챙겨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물을 받는 서로의 반응을 보자 더욱 신이 났다. 나는 호스트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국 전통 탈이 들어있는 액자를 드렸다. 처음에는 ‘혹시 안 좋아하시면 어쩌지?’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나의 걱정이 너무나 허무할 정도로 정말 좋아하셨고 신기해 하셨다. 그것에 대한 전통 문화를 설명해 드리는 것도 흥미로웠고 나 또한 더욱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극장에 한복을 입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보았다. 관람객들 중 한국사람들을 만나서 신기했고 그들이 한복을 입고 온 것에 대해 칭찬을 해 주셔서 처음에는 조금 민망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지면서 자랑스러웠다.

처음에 엄청나게 많은 친구들을 사귀려고 너무 노력했다. 기대를 많이 했을 수록 실망감이 더욱 컸다. 우리 학교에 나를 포함해서 6명의 교환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내 스스로를 그들에게 비교를 했다. 브라질과 덴마크에서 온 2명은 처음에 나를 깔보았고 무시했다. 나는 ‘내가 몸집이 작아서 그런가?’ ‘아시안이라서?’ ‘못생겨서?’’ 생각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다. 몇몇 눈물로 지새우는 밤들이 지나고 어느 날, ‘내가 왜 그 둘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해야되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오기가 생겨서 ‘내가 너희들보다 미국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고 행복해지리라’ 다짐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이 나를 오히려 도와준 계기가 되었다. 미국 친구들도 교환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자신감을 가지고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자 문제 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항상 한국말만 쓰다가 매일 영어로 공부하고 소통하는 것 또한 무척이나 어려웠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는 것이 너무나 좋았기에 말하기와 듣기를 향상시키기 위해 가족, 친구들과 대화를 하려고 먼저 노력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상황과 문장에 맞게 무슨 뜻인지 알아 맞히거나 물어보았다. 다행히도 그들은 전혀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선뜻 도와주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학교 숙제는 한국처럼은 많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영어로 하자니 정말 적응하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어려웠다. 많은 선생님들이 이해를 해주시며 설명을 잘 해주셨고 부모님께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아 도움을 받았다.

향수병을 딱히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집이 보고싶고 모든 것이 그리웠을 때, 나는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보고싶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혼자 방에만 있었는데, 악화만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집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독서와 숙제를 하고, 호스트 가족,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하였다.

 

나는 교환학생으로써 한국 문화를 알리려고 노력 했다. 많은 친구들이 “너희 나라에서는 무엇을 주로 먹어?” “모든 음식이 다 매워?” 등등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내가 가져온 한국 음식들을 만들어 먹었다. 예를 들면, 밑에 왼쪽 사진은 친구(Kezia)와 불닭볶음면을 만들어 먹는 사진이다. 우리 두명 다에게 처음이었다. 또한, 오른쪽 사진은 Lucia와 함께 후리카케와 밥과 김을 먹는 사진이다. 정말 좋아해서 매번 우리집에 올때마다 밥과 후리카케 있냐고 물어보고 항상 먹는다. 이것 뿐만 아니라, 동생에게 단소를 가르치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한국말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동생은 이제 간단한 아리랑을 부를줄 안다.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동생

나는 k-pop을 정말 좋아하고 한국 문화에 관심이 굉장히 많은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또한
한국말을 할 줄도 알았다. 그녀를 처음에 만나고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신이 났다. 항상 학교도 같이 가고 같은 교회도 다녀서 항상 붙어 있었고 단짝이었다.

어느 늦은 밤, 그녀가 갑자기 “우리 다시 만나기 전까지 잘 쉬고 잘 자, 정말 정말 사랑해 민지야.” 문자를 남겼다. 그냥 안일하게 아무 일도 아닐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긴게 크나 큰 실수였다. 그 따르는 일요일에 그녀가 그날 밤 자살 시도를 했다고 그녀의 할머니가 알려주셨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그녀의 가족이 발견해서 멈출 수 있었다. 나에게 정말 충격이었고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만약 그날 밤 그녀의 가족이나 나의 부모님에게 말을 했다면 그녀가 더욱 빨리 발견되었거나 아예 안 일어났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녀를 다시 보지는 못 하지만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녀가 졸업하고 여유가 조금 생기면 한국에 오겠다고 하니까 그날 만을 기다릴 뿐이다.

 

Knowledge ball을 참여한 것은 랜덤 지식과 팀워크를 배울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경쟁할 때
팀으로써 서로 소통을 하고 랜덤 문제를 맞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Limon, Flagler, Eads, 등 전방곳곳을 경쟁하러 다녔다. 우리는 신문에 두번이나 나왔다.

 

골프치기를 즐겨했고 팀원으로써 다른 팀들과 경쟁하는 것도 재밌었다. 미국 오기전까지 한번도 제대로 골프를 친적이 없었지만 열심히 차츰차츰 배우자 시합에 나갈 수 있었다. 우리의 첫 토너먼트는 4월 16일, Wray에서 열렸다. 예정대로였다면 한참 전에 시작했어야 했지만 봄이긴 하지만 말도 못하게 심한 눈과 바람때문에 많이 미루어진 것이다. 신나기도 하고 조금 긴장고 되었지만 최선을 다하였다.
 

나는 드라마 동아리도 들었다. 오디션을 볼때 정말 떨렸다. 오디션은 인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다 괜찮을거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그래서 결국 2역할을 맡게 되었다!! 학생과 도둑역이다. 연극이름은 "The Squad Room"이다. 정말 신기했던게 친구들이 자신들의 역할에 맞게 그들의 열정적인 다른 면을 볼 수 있었고 집중하여 실제로 그 역할이 되어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서 드라마의 매력에 빠졌다. 우리는 매일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열심히 연습하였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서는게 부끄럽고 무서웠지만 두려움을 극복할 기회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즐기려고 최선을 다했다. 공연 후 관객들이 하나 둘씩 일어서며 치는 갈수박채와 환호성에 우리가 들인 노력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고 감동적이었다.

 

영어 소통 실력을 늘리기 위해 봉사를 했다. 매번 우리 학교에서 배구, 야구, 농구,트랙 경기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학생들이 음식과 음료를 파는 컨세션을 운영한다. 나는 주문을 받았고 음식을 서빙했다. 그들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들었고 뿌듯했다.

도서부에서는 우리가 각자 자기가 읽고 있는 책을 도서관에 가지고 오고 나누며 서로 추천해준다. 그로 인해 나의 친구들은 어떤책을 읽는지 알 수 있었고 좋은 책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읽을 책들의 리스트가 엄청 불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재밌는 게임도 많이 한다.

 
이 사진은 우리가 “Bring Your Own Book”게임에서 성 패트릭 기념일 상품을 받고 찍었다.

처음에는 정말 돌아가고 싶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예상치 못하게 정반대이다. 평생 이 경험을 잊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친구들, 가족들과의 추억들이 정말 많아서 모든 것이 그리울 것이다. “책임감” 이 항상 나의 목표 단어였다. 분별력을 가지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자고 항상 마음에 다졌다. 그러기 위해서 비록 나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거의 끝나가지만 남은 시간동안에도 1초도 낭비히지 않고 내가 맡은 숙제와 수업에 참여하고 더욱 배우려는 등 열심을 할 것이다.

나는 나의 1년을 먼 땅 미국에서 혼자 보낸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약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평생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모두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최고의 인생과 기분을 경험해 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의 부모님, 가족 모두, 그리고 밝은 미래 선생님들에게 나의 인생에서 최고의 1년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신 것과 항상 나를 위해 기도와 함께 응원해 주신것에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