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형] 미국에서 살아남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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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아남기!
Covenant Christian School (FL) 기독사립 Poudre High School (CO) 미국교환 김주형 제가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작년 10월, 저희 어머니께서 극동방송 라디오에서 나왔던 미국 교환학생에 대해 들으시고 저에게 “주형아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때는 제가 실제로 미국에 갈 수 있을지 상상도 못하고 그냥 “ 응, 가서 공부하면 좋지” 라고 대답했는데, 그 주 토요일 날 바로 어머니께서 교환학생 상담 받으러 가야 하니 빨리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영문도 모른 채 ELTIS 시험도 보고 대표님 상담을 받고, 미국 교환학생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대표님의 설명을 듣고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어머니께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호스트 가족에게 보내는 영상과 편지, 교환학생 과정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다행히 비자도 잘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출국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서 사용할 물건을 사고, 학교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고, 가족들과 출국 전 추억 쌓기 여행도 하면서 하나 둘씩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출국 당일 날에는 1년 동안 엄마, 아빠, 동생들을 실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엄마랑 아빠를 붙잡고 엄청 울었습니다. 정작 부모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으셨습니다... 시애틀에서의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했던 시은이, 현승이, 리나 언니와 훨씬 더 친해지고 정도 많이 들어서 공항에서 해어질 때 또 한 번 엄청 눈물은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덴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호스트 가족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연습하고 호스트 가족은 어떤 분들일지, 어떤 성격을 가진 분들일지 생각했습니다. 2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덴버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인 친구 3명과 같이 비행기에서 내려서 지역 코디네이터를 찾아 해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저희들 중 아무도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이 없어서 무작정 공항을 돌아다녔습니다. 공항을 해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저희를 보고 한 여성 미국인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분이 지역 코디네이터에게 전화도 해주시고 저희가 일행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저희 옆에서 도와주셨습니다. 미국인 여성분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짐도 찾고 코디네이터와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었는지 호스트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다른 곳에 계셨습니다. 결국, 코디네이터께서 저를 데리고 호스트 부모님이 계신 곳 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지낼 호스트 가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저녁 호스트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서 특별한 저녁과 디저트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나를 환영하면서 호스트 엄마가 만드신 파이 호스트 가족은 나를 진심으로 아껴줬다 저의 미국에서의 1년은 절대로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 친구가 생기지 않아서 힘들어 울기도 했고, 가끔씩 제 생각을 영어로 설명을 하지 못해서 답답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환학생이 끝날 즈음 저는 학교에서 친구를 가장 많이 사귄 아시아인 학생이 되었고 영어실력도 많이 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1년 동안 미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법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저는 미국 콜로라도주에 배정받아 Fort Collins 에 있는 Poudre high school 을 다녔습니다. 이 학교는 1800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규모가 매우 큰 학교였고 이미 학교에는 스웨덴, 중국, 브라질, 이탈리아, 베트남,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른 교환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은 말도 많이 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교적인 아이들이었는데, 말 없이 조용히 행동하는 저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저를 힘들게 한 것들 중 한 가지는 친구를 사귀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미국인 친구들에게 영어로 말하는 것이 무섭고 부끄러웠습니다. 미국은 스케일이 다르다.. 저는 자신감을 되찾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인 수학과 오케스트라에서 속된 말로 나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잘하는 수학수업에서 잘 따라오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수학을 설명해 주면서 친구들과 친해졌습니다. 같은 수학수업을 듣는 친구들 중 Off period가 겹치는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수학을 같이 공부하기도 하고 1시간 내내 이야기 했습니다. 또 제가 가지고 있던 제 이름 스티커를 계산기, 휴대폰, 물병, 락커 등에 붙이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영어실력도 늘었습니다. 제 영어실력과 자신감이 늘기 시작하면서 학교에 K-pop에 관심이 있던 아이들이 저에 대해 듣고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저는 점심시간마다 한국 음식과 한국 과자를 가져가서 같이 먹기도 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한국말과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한글은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쉽게 가르칠 수 있었고 친구들은 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모음 10자를 먼저 가르치고 자음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했더니 습득이 빠른 친구들은 2~3시간 만에 한글을 깨우쳤습니다. 한국말과 한글을 가르치면서 저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사립으로 연장했을때! 수학수업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에서도 저를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기 때문에 악기를 2년~3년 배운 아이들보다 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첫 날부터 제일 잘하는 연주자가 앉는 first chair 에 앉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아니꼽게 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제가 실력을 보여주고 먼저 말을 걸었기 때문에 미국 아이들이 금방 저를 인정해 주었고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를 사귈 때에 중요한 것은 좋은 영어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어 실력이 있어도 미국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다른 교환학생 아이들도 보았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자신감 하나로 미국인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다니는 교환학생도 보았습니다. 저는 수학 수업과 오케스트라 수업에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용기 있게 먼저 말을 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엔 저에게 먼저 같이 점심을 먹으러가자고 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학교가 끝나고 저를 집으로 초대하는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렇게 친구가 생기지 않았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막 왔을 때와는 다르게 저는 정말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영어실력을 많이 향상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친구를 많이 사귀고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문화 선교사로서 지낸 교환학생 1년이라는 시간은 저를 정말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게 했고 힘든 일도 견뎌내게 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있을 때와는 다르게 세상을 보는 저의 시각도 바뀌었습니다. 세계 최대 강국 미국에서 넓은 땅과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곳저곳 많이 놀러다녔다! 앞으로 저는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아서 큰 꿈을 펼쳐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통일 한국 시대가 온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다가올 시대를 대비하는 리더, 선한 영향력을 주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미국 유학은 앞으로 저를 더욱 성장시킬 것이고 글로벌 리더가 되는 주춧돌이 될 줄 믿습니다. 미국 교환학생이라는 좋은 기회를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미국 유학을 허락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저를 위해 노심초사 걱정해 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밝은미래교육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