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지] 교환학생은 평생 잊지 못할 예쁘고 아름다운 추억 |
---|
교환학생은 평생 잊지 못할 예쁘고 아름다운 추억
Anaconda High School (MT) 미국교환 문민지 작년 이맘때쯤, 공부도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던 나에게 아빠께서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대해 들으시고 미국에 갈 마음이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많이 접해왔고 다른 과목들 중에서도 영어를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교환학생프로그램에 참여해 혼자 1년 동안 가족과 그리고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평소 엄하고 교육을 중요시 생각하는 아빠께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돌려 말했었다.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품은 채 나는 아빠와 함께 밝은미래교육을 방문했다. 밝은미래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난 후 난 교환학생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고 미래가 확실하지 않은 내가 미국을 가서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찾고, 배우고,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후부터 미국을 가겠다고 다짐을 하고 열심히 준비를 해서 미국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배정받은 몬태나주에 가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시애틀에 먼저 도착을 했다. 밝은미래 친구들 여섯 명과 함께 같이 가게 되었는데 낯선 곳을 함께 가게 되어서 그런지 서로 처음 만난 사이에도 불구하고 금방 친해졌다. S4H미국재단에서 현지오리엔테이션을 하는 곳인 시애틀 대학교에 도착하고 일본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을 만났다. 5일 동안에 우리는 많이 친해졌고 오리엔테이션 후 아쉬움을 남긴 채 각자 배정받은 곳들로 떠났다. Seattle University (워싱턴주) S4H 미국교환학생재단 현지 오리엔테이션 (시애틀대학교) 1. 초등학생 카운슬러로 캠프에 참가하다 8월 1일, 내가 배정받은 몬태나주에 도착하였다. 비행기가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나는 공항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호스트 가족들은 공항에 들어서자 마자 나를 바로 알아차렸다고 했다. 그리고 일찍 도착해서 놀랬다고 했다. 호스트 가족들은 엄마, 아빠, 여동생 3명이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다. 첫째는 날 밝게 맞이해주었고, 둘째는 나를 보고 부끄러워했고, 셋째는 호스트맘 다리 뒤에 숨어서 나를 피했었다. 호스트 부모님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초등학생 카운슬러로 참가한 캠프 집에 도착하고 며칠 되지 않아 나는 호스트 대디가 이끄시는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년에 한번 있는 캠핑인데 학생들이 다 같이 모여서 노는 것이라고 해서 따라갔다. 하지만 거기엔 거의 초등학생 아이들 뿐이였고, 나랑 같이 학교를 다니게 될 친구들 몇 명이 있었다. 알고 보니 고등학생 아이들이 카운슬러 역할을 해서 초등학생들을 지도하고 이끄는 것이라고 하였다. 난 고등학생이여서 카운슬러 역할을 했어야 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큰 역할을 나한테 주어서 너무나도 떨리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많이 알려주고 도와줘서 잘 마쳤던 것 같다. 학교 시작 전에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좋았고, 미국을 오자마자 경험을 쌓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고 난 후에 나는 모든 것이 잘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호스트 부모님은 생각보다 많이 젊었다. 나와 나이가 15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부모님이라기 보단 친구에 가까웠다. 나이차이가 얼마 안 나 금방이라도 친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너무 어색해 그 어색함을 피하려고 매일 방에 혼자서 있는 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한심해서 마음을 굳게 먹고 호스트 맘에게 다가갔다. 내가 먼저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난 조용하고 활발하지 않은 성격이여서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친해 지는게 힘들다고 하였다. 나의 얘기를 듣고 난 후에 호스트 맘은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고 있었다고 하셨고, 먼저 용기를 내어주어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 뒤로 우리는 정말 가까워졌고 편해졌다. 그날 나는 먼저 용기를 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걸 느꼈다. 그렇게 용기를 내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2. 호스트집에 적응 못하고 떠난 다른 교환학생 미국에 온지 2주정도 지난 후에 호스트 맘은 주 코디네이터로부터 교환학생을 한명 더 받을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다. 호스트 맘은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셨다. 난 좋다고 대답했고 우리는 교환학생을 한명 더 받기로 했다. 그 애는 카자흐스탄에서 온 카밀라였다. 나와 똑같이 가족이랑 멀리 떨어져 미국을 온 친구가 옆에 생겨서 의지하고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호스트 가족사진 하지만 카밀라는 달랐다. 카밀라는 호스트가족과 맞지 않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느 날엔 카밀라가 호스트맘에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는데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호스트맘은 나에게 카밀라에 대하여 얘기를 해주었고 나는 얘기를 들어주었다. 호스트맘은 이 일로 많이 힘들었는데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결국 카밀라는 다른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 상황을 겪고 나서 나는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야겠다고 느꼈고, 대화의 중요성을 느꼈다. 카밀라가 떠나고 난 후엔 호스트가족과 더욱 더 많이 친해지고 편해져서 진짜 가족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몬테나주의 작은 동네 ‘Anaconda’ 라는 곳이였다. 서울에 살던 나는 아나콘다의 모든 것이 좋았다. 작고 비록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지만 맑은 공기, 이웃들, 또, 길을 걷다 옆을 보면 사슴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새롭고 신기했다. 그렇게 적응을 천천히 해나가던 중에 나는 학교를 가게 되었다. 학교에 가는 첫날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첫 시간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기소개를 하였다. 나는 너무 떨려 이름과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만 소개하고 자리에 앉아버렸다. 3. 내성적인 내가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Anaconda High School (몬테나 주) 한국과는 많이 다른 미국학교에 언제 적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품고 다음날 학교를 갔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학교 적응은 쉽게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게 영어였지만 수업방식과 과목들, 선생님들 모두 다 나에게 너무 새롭고 좋았다. 하지만 한 가지 어려웠던 것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 이였다. 처음엔 내가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말을 걸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였다. 물론 말을 걸어 준 친구도 있었지만, 관심은 있어도 말을 걸지 않는 친구들이 대부분 이였다. 그때 호스트 맘이 해주신 말이 떠올랐었다. 너가 먼저 용기를 내주어서 고마웠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때 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컴퓨터 수업시간에 옆자리에 앉는 ‘Brooke’ 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영어를 어려워하면 항상 옆에서 도와주고 설명해주려고 했다. 나는 먼저 Brooke 에게 말을 걸었고 그 뒤로 우리는 친해지게 되어서 과제도 같이 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항상 같이 시간을 보냈었다. 조용하고 소심한 내가 용기를 내서 친구가 생겼다는 게 놀라웠다. Brooke은 나에게 큰 존재가 되어 주었다. 나에게 많은 것을 소개시켜주고 알려주고 보여줬다. 그렇게 조용했던 내가 미국에 와서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미국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호스트부모님, Brooke, 또 다른 친구들 모두 내게 큰 힘 이였지만 제일 큰 힘이 되어준 건 호스트 여동생들인 것 같다. 한국에 동생이 두 명이 있는 나는 순수하고 착한 호스트 동생들이 친동생처럼 느껴졌고, 호스트 동생들도 날 친언니처럼 대하고 잘 따랐다. 첫 만남 때 엄마 뒤로 숨던 아이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에 나를 따르고 언니로 생각하는 것이 정말 큰 행복 이였다. 호스트 동생들 덕분에 집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 마치 미국에 꼭 또 다른 가족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스러운 호스트 동생들 4. 미국 어린아이들은 설거지를 한다 미국과 한국은 정말 달랐다. 음식, 생활, 학교, 문화, 사람들, 모든 것이 달랐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미국음식을 즐겨먹지 않았다. 피자, 스파게티, 빵, 미국에서 주로 먹는 음식들을 싫어했다. 하지만 음식도 문화라고 생각을 했고, 뭐든 감사하고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가끔 한국음식을 만들어 주면 처음 접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호스트가족들에게 감사했다. 난 한국에 있을 때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내가 같이 지냈던 호스트 가족들은 애들이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애완동물 먹이를 주었다. 난 그렇게 어린 애들이 많은 일들을 스스로 해 나아간다는 것에 놀라서 매일 나도 설거지를 도와주었다. 빨래도 혼자 해 본적이 없었던 나는 빨래를 혼자 하게 되고, 설거지를 하게 되고, 방청소를 하게 되었다. 당연한 것처럼 들리는 것들이지만 나에겐 정말 큰 변화였다. 할로윈데이 호스트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지냈던 Holiday 는 하나하나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없다. 할로윈, 크리스마스, 생일파티, 땡스기빙데이, 모두 한국에 있는 것들이지만 너무나도 달랐다. 온 가족과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보내는 휴일은 최고로 재미있었던 것 같다. 게임을 즐겨하지 않는 나는 다같이 모여서 게임 하는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것 같다. 5. 교환학생은 평생 잊지 못할 예쁘고 아름다운 추억 미국에 오기 전엔 10개월 동안 어떻게 나 혼자 지내야 하는지 걱정만 앞서고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는데,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짧게 지나가는 게 믿을 수 가없었다. 집에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올 때마다 우울했다. 한국에 돌아간다는 것은 기뻤지만 미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같이 느끼고 알아줬던 호스트 부모님은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으셔서 ‘옐로우스톤’ 으로 마지막 여행을 가게 됐다. 옐로우스톤은 정말 예쁘고 아름다웠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어준 가족들이랑 함께 여행을 했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마지막엔 즐겁게 웃으면서 헤어지고 싶었는데 정말 쉽지가 않았다. 서로 의지하고 많이 챙겨가며 도와줬던 호스트가족들과 헤어지려고 하니까 많은 것들이 생각이 났다. 내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 소중한 추억 하나하나 다 생각이 났다. 10개월이 그렇게도 빨리 지나갔다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사랑하는 호스트 동생들과 함께 (옐로우 스톤에서) 나는 10개월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고 또 다시 경험하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고, 10개월이 나에게 헛되지 않고 뜻깊고 값진 시간이 되어서 나를 미국으로 갈수 있게 도와준 가족들과 미국에서 잘 생활 할 수 있게 도와준 호스트가족들과 미국 생활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었던 미국 친구들에게 모두 다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