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진로란 ‘부모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미국무부 교환학생 참가후기
[김수연] 다른 사람의 삶을 살지말고 너 스스로 중심을 찾아!
다른 사람의 삶을 살지말고 너 스스로 중심을 찾아!
 
Deakin University
Highland High School (ID)
김수연
 
1. 내가 원하는 길이 미국에 있어?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마음속에는 항상 동물들을 돌보고 그들을 도우며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외국의 광활하고 거대한 자연 속에서 사는 동물들을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었다. 중학교 3학년,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간 한 친구를 통해 밝은미래교육을 알게 되면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내 꿈을 위한 첫 걸음이 되었다.

집안 형편상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나 한 사람을 위해 가족 모두가 희생해야 함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 고마움, 미안함 그리고 그만큼 어깨에 느껴지는 부담 또한 내 몫 이었다. 미국에서 정말 새롭게 발전한 모습으로 돌아올까? 친구를 사귈 수는 있을까? 인종차별이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 나의 걱정을 아시는지 밝은미래교육에서 교환학생프로그램을 마치고 온 고등학교 선배들과 미국 대학교에 재학중인 선배들의 설명회에 초대해 주셨다. 선배 언니, 오빠들은 한때 같은 교환학생이었지만 지금은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정말 하고싶은 공부들을 하고 있었다. 발표를 하는 동안 재치있는 말솜씨와 농담들이 설명회장을 기분좋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걱정을 했던 진솔한 이야기를 한 언니가 미국에 가서 당당하고 멋지게 돌아온 스토리가 내게 가장 큰 용기를 주었다.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대표님과 언니

“저는 모르면 무조건 물어봤어요. 그냥 그대로 이아기했죠. 두려운 것들을 그대로 마주했어요. 처음 학교 간 날 점심시간에 급식을 받고 모르는 애들 무리에게 가서 나 오늘 처음와서 친구가 없어. 같이 앉아도 되? 그 애들은 정말 반갑게 웃으면서 당연하지, 같이 앉자 그랬어요. 그 때 지금의 제일 친한 친구도 만났고요.”

이 언니의 이야기가 내 가슴을 뻥 뚫어 주었다. 그래, 두려움을 숨기지 말고 그대로 마주하자. 모르는 것은 당당하게 물어보면 되지. 이것이 매순간 미국에서 낮선 상황을 마주할 때 마다 용기를 주었다.

 

 
2. 헛된 노력? 그런건 없더라고~

며칠후 호스트가족들이 교환학생을 선택할 때 읽을 자기소개서를 써야한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시험공부 할 때만큼 열심히 며칠에 걸쳐 정성들여 써서 보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에 호스트가족이 정말로 나를 원하는 분이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2주일정도 지났을까, 밝은미래교육에서 들뜬 목소리로 전화해 호스트가족이 결정되었다고 하셨다. 미국 새학기 시작 2달전인데 일찍이 결정된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시면서 나보다도 기뻐하시는 모습에 내 노력이 빛나는 것 같아 더 뿌듯했다.

호스트가족 소개서를 읽어 내려가다가 뭐라고? 하면서 다시 읽었다. 노부부이신 호스트 부모님, 그리고 Pet 목록에 토끼, 닭, 염소, 개, 고양이, 그리고 말과 당나귀……? 자기소개서에 동물을 좋아한다고 쓴 것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들 줄이야. 운명처럼 내 소원이 실현되었다. 이렇게 많은 동물들과 1년동안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오다니,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였다. 예전에 자기소개서를 대충 썼다가 큰 코 다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안았는데 정말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맞다.

2달후 8월 23일. 미국 북부에 위치한 Idaho주의 아주 작은도시 Lewiston행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위를 날아가는 순간에도 미국에 내가 정말로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헛된 노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I miss you ♡


 
3. 작은농담으로 큰 언어의 벽 허물기

미국에 도착해서는 모든 것이 낯선 기분을 갖게 한다는 것만 느껴졌다. 호스트 부모님은 노부부셔서 아들 2명은 내 친부모님과 거의 동년배셨다. 학교를 가기 전날까지 1년을 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어떻게 지내나하는 생각에 밤마다 울다가 새벽에 잠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학교복도를 처음 들어가는 순간 두려움보다 설렘이 커졌다. 4층 높이의 우중충한 서울의 고등학교와 달리, 1층뿐이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Highland High School에 들어가 주욱 늘어선 사물함들을 보는데 미국 드라마 속 한 장면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한 선생님이 Katy라는 이름의 여자애에게 나를 부탁하시며 오늘 처음 왔으니 하루동안 잘 이끌어주라고 하시고는 가셨다. 그날 하루종일 나는 학교의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Katy는 모든 반에 나와 함께 들어가 전교생을 나에게 소개시켜주었다. 1교시가 시작함과 동시에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부탁하셨다. 평소에 나답지 않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벌떡 일어나 교실이 쩌렁쩌렁 울리게 말했다.

“ Hi, I’m Suji from South Korea. I want to be a friend with all of you. Nice to meet you!!”

준비한 대사인데도 내가 무슨 말을 한건지 정신이 없었다. 반 친구들은 오히려 더 크게 나도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며 대답했다. 너무 고마웠다. 그 어떤 것보다도 나를 배려해서라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많은 친구들이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건넸다. 회사도 아니고 웬 악수? 새로운 문화차이가 재미있어서 악수를 청하는 몇몇에게 가위바위보 하는 것처럼 가위를 내밀면서 먼저 장난을 걸었다. “Huh?” 하면서 이해를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재밌다며 작은 농담에 마음을 열어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호스트 아버지와 낚시 :)

HHS는 Craigmont에 위치한 전교생 50명의 소규모 공립학교였다. 그만큼 내가 사는 Winchster Community도 600명 인구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학교에 가기 전날, Lake Cafe에서 호스트가족들과 점심을 먹는중에 마을분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씀하셨다. “ Welcome to Winchester Community!” 그분들의 밝은인사에 Community가 이분들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느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던 서울생활과는 다르게 생판 처음보는 낯선 외국인에게 모두 안아주며 반갑다 하시는 이곳이 처음부터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의 호스트가족은 내가 열두 번째 교환학생인 만큼 나보다도 아시아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누군가 나의 인생의 가장 큰 행운 중에 한가지를 묻는다면 나의 호스트 가족을 만나게 해주신 것이다. 누구보다도 내가 미국에서 어떤 점이 힘들지에 대해 먼저 알고 내 가족이 되고자 마음을 열고 항상 호스트 Daddy는 농담과 장난을 거셨다. 표현을 어려워하는 내가 호스트 Daddy께 친 아빠만큼 마음을 열게 된 것은 호스트 그 분의 끝없는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호스트 맘은 그와 달리 규칙과 책임을 중요시하는 분이시면서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 분이셨다. 때로는 그런 점에서 나와 충돌하기도 하고 많이 혼나면서 미워한 적도 적지 않게 있다. 그럴 때마다 주일날 교회에 가면 목사님은 마치 내 고민을 들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라는 말씀을 하셨다. 정말 우연처럼 그럴 때마다 목사님은 나를 보시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끄덕이시고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목사님을 보면서 그 어떤 구절보다도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는 삶을 배웠고, 나는 목사님과 같은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목사님은 항상 먼저 농담을 거시고 또는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안아 주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호스트맘에게 먼저 다가가 농담을 건네고 친엄마에게 얘기하듯이 학교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재미있는 이야기도 종알종알 해드렸다. 그러고나니 내가 스스로 알 수 있었다. 호스트 맘과의 거리가 벌어져 있던 것은 내가 아예 문을 닫고 등을 돌려버린 것이 하나의 큰 이유였다는 것을. 한번은 교회의 지인분이 우리가족에게서 기분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하신 날 우리가족은 기분이 좋아서 집에 가는 길에 오랜만에 즐거운 외식을 했다.

“미국을 와서 무엇을 얻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을 얻었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내 옆에서 멘토로 있어주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HHS, 우리학교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인품을 가진 천사표 친구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 친구들의 작은 농담들은 내 하루하루를 빛나게 하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미국에서 지낼 때는 출국날짜가 너무나 멀어 보였다. 며칠 남았는지 세어보면 끝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진 후에는 더 하고싶은 일이 많아졌다. 어떤 한 친구는 같이 있기만 해도 전체 분위기가 밝아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나와 정말 친한 친구가 되어서 나도 그런 기운을 받은건가 싶다.


웃긴 표정짓기ㅎ

 

4. 진정한 스포츠맨쉽을 배우고 메달까지 목에 걸다!

미국학교는 계절마다 행하는 운동의 종목이 다르다. 9월초에 10학년으로 입학한 나는 멋도 모르고 얼떨결에 Volleyball(배구) 팀에 들어갔다. 한 친구가 배구 해본적 있냐고 묻는 말에 학교 체육시간때 배운 배구를 떠올려 그렇다고 대답한 것을 듣고 명단에 내 이름을 제출하였다. 방과후에 내 실력을 테스트해 본 코치님은 내가 공을 3번도 못 받아내는 것을 보시더니 시합에 함께 나갈 수는 없지만 같은 팀으로 열심히 해보자고 하셨다. 이해가 되는 한편, 스스로 너무 창피하고 배구팀에 들어온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연습중 실수하면 나를 무시하거나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 꺼려할 것만 같았다. 첫 연습날, 2명씩 짝을 지어 공을 패스하는 연습을 하는데 내 짝 Jonell은 정신적인 부분에 장애가 있는 친구였다. Jonell은 내가 실수로 공을 떨어뜨리거나 멀리 튕겨버려도 오히려 웃는 얼굴로 격려해주었다.


Highland High School 운동시간

“It’s okay. You can do it, Suji. Try it again!”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관대하고 마음을 먼저 주는 친구를 만난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단체로 연습할 때에도 배구팀은 서로의 실수에 “할 수 있다!”와 “괜찮아!”를 열성적으로 외치는 친구들이었다. 10번을 놓치고 11번째에 도전하면 끝까지 응원해주었다. 시즌 내내 잘하지 못해도 못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모두가 응원해주는 분위기가 지금의 우리팀을 만든 것이 분명했다. 그 덕분에 더 노력해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즐기면서 했다. 어느 날, HHS에서 시합이 열렸다. 보통 때처럼 선수석에 앉아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치가 경기에 나가보겠냐는 신호를 보냈다. 처음엔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어보니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후반부니까 편하게 뛰라고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사실상 우리 팀이 지고 있어 밑져야 본전인 그 상황에서, 내게 경기를 뛰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분명했다. 경기가 재개되고 내 구역으로 날아오는 공은 모두 걷어냈다. 연습이라고 생각하니 Jonell이 던진 공이라고 생각이 들어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관중석에서 우리학교 전교생이 내 이름을 외치며 응원하는 것이 들렸다. 시합이 무승부로 끝났는데도 우리팀은 이겼을 때보다 더 기뻐하며 내게 고맙다고 했다. 팀의 일원으로 함께 환호하던 희열은 내 인생에서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기쁨이었다. 그 어떤 말 보다 스포츠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았다.

봄이 시즌이었던 Track은 나 스스로와 싸워야 하는 종목이자 정신적으로 강해지는 계기였다. 400m를 5번 연속으로 전력질주 해야하는 매 연습때마다 “할 수 있다!”를 입으로 되뇌이며 뛰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걷고 싶은 마음이 의지를 눌렀기 때문에 스스로와 싸우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잠시만 쳐지면 뒤에서 누군가 나를 앞질러 갔기에 더 승부욕이 생기기도 했다. 경기에 나가 그라운드에 서면 총성을 기다리는 순간이 가끔은 지옥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많은 응원 속에서 달리는 순간에 “Highland Husky!”를 부르짖으며 응원하는 것이 들릴 때면 ‘차라리 조용한 것이 더 집중해서 달릴수도 있을텐데..’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응원석에 서면 나도 더 크게 Highland를 외치고 있었다. 응원정신만큼은 HHS가 최고였다. 4,200m 릴레이경기에서 2등 메달을 4명이 함께 받아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 어느 때보다 버스 안이 즐거운 환호로 시끌벅적했다.

Track Season이 끝나고 1년 동안의 모든 운동종목이 종료되어 기념하는 이벤트인 Highland Husky Athletics Night에 Track 코치님이 Most Improved 메달을 수여하시기 전 말씀을 멈추셨다. 그리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만약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이번 시즌 Track team의 이 선수를 보았다면 누구든 나와 같은 선택을 하실 겁니다. 지금 그 어느 누구보다 이 메달을 받기 원하는 선수가 누구인지 이 자리에서도 보이는군요. (웃음) 어디에 있더라도 지금처럼만 노력하는 사람이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내 이름을 호명했다. 이름을 듣는 순간 옆에 앉아있던 팀 중 한명이 장난스럽게 “그럴 줄 알았어” 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뻔한 것을 참았다. 앞으로 나가 메달을 목에 걸어주시면서 코치님이 웃어 보이며 입 모양으로 “You did it.” 하셨다. 이 상은 그 동안 나만이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고의 시간이 빛을 발했다는 것을 모두에게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그때 본 우리 팀과 모두의 박수, 환호소리에서 내가 그들의 일부라는 것을 온 몸으로 감격한 순간이기도 했다.



 
5. 다른사람의 삶을 살지말고, 너 스스로 중심을 찾아!

이 이야기는 사실 아주 하고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혼자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한 구석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극복하는 과정의 일부라 생각하고 있다. 미국을 가기 전과 다녀온 후 나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한국의) 변했다고 말한다. 그전의 나는 주목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내 행동과 생각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남자친구 사귀는 것도 안 좋은 소문이 날까봐 거절한 적이 대부분이다. 나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당당해지기가 더 힘들었다. 미국에서도 이런 성격으로 인해 좋은 친구들과 배려에도 불구하고 예쁘고 멋지고 영어도 잘하는 미국인들이 인종차별이라도 할까 두려워 주눅들어 학교생활을 힘들어 한 시기가 정말 길다. 친한 친구가 생긴 후에도 그 친구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내 탓 같아 그 날을 망치고 돌아오는 날이 대부분 이었다. 주일에 교회에 가면 항상 나 스스로 설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이목에 내가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때에도 역시 목사님의 설교가 내 마음을 울린 적이 많았다. 마음이 불편할 때는 자기 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곤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 말 한마디는 내가 찾아 헤매던 끝없는 질문의 종점이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견해가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과 영감을 따르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가슴과 영감은 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우리는 미녀!

어떤 사람들이 말 한마디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고 할 때면 그건 이야기 책에나 나오는 뻔한 사람들의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해왔다. 그 생각의 근원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면 그것은 뻔한 스토리가 아니라 뻔한 답인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찾아헤매는 질문이 없다면 그 답이 보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그 순간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그땐 이미 지나쳐 버린다. 한국에서 필요치 않았던 걱정들과 더 크게 느껴지는 타인의 시선이 내게 절실하게 이 질문의 답을 찾아다니게 한 것이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가기전 했던 걱정들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반면에 실상 내가 마주한 문제는 나의 내면에 대한 것이었고 말이다. 어떤 것을 도전할 때 두려움 때문에 혹은 후에 올지 모르는 후회가 겁나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정말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놓칠 수 있는 선택의 갈림길인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부터 나는 좀 더 솔직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했다. 행복하게 살기도 짧은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 온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작은 표현과 내게 필요한 작은 일들을 남의 눈치보지 않고 가슴의 영감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친구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고 다른 이의 기분이 좋고 싫음과 상관없이 내 주관에 따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곁에만 가도 좋은 기운을 가진 친구들 또한 그들만의 중심이 서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헬스장에 간 날 코치님이 나를 보자마자 뭔가 달라졌다고 하셨을 때 뭐가요? 했다. 그때까지도 내가 얼마만큼 변했는지 알지 못했다. 친구들, 가족들, 아는 분들이 모두 달라졌다고 하는데 살이 쪄서 그런가 하고 말았다. 어젯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께서 말하셨다. 처음 갈 때 걱정도 많이 했는데, 돈이 얼만큼 들었어도 전혀 아깝지 않았을 것이라고, 할머니가 정말 좋아하신다고 보내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니(장난) 말하시는데 그제서야 정말 내가 그 일로 많이 변했구나 실감이 났다. 내 경우는 어떤 사람이 보면 별 일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스스로에게 원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답을 찾는 과정은 정말 두번 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또 그때가 되어서 답을 찾다가 보면 점점 나 스스로가 발전하는 사람이 되는 꼭 필요한 소중한 시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벗어나기로 선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높은 산과 같은 일들은 해내고 나면 산 정상에서 그 밑을 바라보며 내가 해낸 일들이 너무나 뿌듯해 다른 산을 또 올라가고 싶어질 것이다. 지금 한국에 돌아와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또 다른 산을 오르기 위해 여러 가지 등성이들을 둘러보고 있다. 어렵다. 정말로. 이러한 산을 오르는 과정은 알수 없는 길을 헤매고 헤매야 한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건 어쨌든 찾다보면 찾던 그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에 다녀온 것은, 영어만 배우고 온 것이 결코 아니다. 가기 전에 이미 교환학생을 다녀온 선배들의 이야기가 영어공부보다 더 다른, 나 혼자서 사는 법을 배웠다고 했을 때는, “요리하는법을 배워왔나?” 했다. 그러나 그 다름이란 그들만의 어떠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임이 분명하다. 나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내어주신 밝은미래교육. 제 인생을 더 빛나는 길로 이끌어 주신 길잡이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