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 미국교환학생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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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환학생 유학생활 이야기] 값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 미국교환학생 (1)
미국교환학생 컨설턴트 이은수 2015년도 1월학기 미국교환학생 김예은 내가 미국에 온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반년을 지내보고 참가후기를 쓰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이 값진 경험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보통은 미국에 갈 준비를 하는 교환학생들은 약 1년의 준비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3개월, 호스트 배정일로부터 채 2달도 안되어 미국에 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막 나간다고, 평생을 살면서 한 손에 꼽힐 중대한 결정을 너무 생각 없이 한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말 그대로 생각 없이 답은 ‘Yes’라고 처음 우리 아버지와 밝은미래교육에 갔을 때 결정했다. 나는 평소에도 크고 작은 결정을 두고 두 선택의 나쁜 점들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심하게 갈등한다. 때문에 나는 이렇게 생각을 고쳤다. 미국에 가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면 나는 안전한 울타리 안이지만, 만약 내가 다른 선택을 하면 그것을 넘다가 도중에 넘어질지라도 일어서기만 하면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있던 곳이 아닌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이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비행기에 탔다. 혼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부터 쉽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언어의 장벽이었다. 보스턴 공항에 도착하고 나는 정말 막막했다. 저질러 버렸구나 생각했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갈림길에 놓인다. 내가 지금까지 누린 안정한 자리와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위를 모두 버리고 온 막막함과 절망감에 빠져있는 것 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을 바라보는 것. 나는 ‘할까말까 할 때는 해라’ 라는 격언을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큰 하나, 내가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단 한 순간도 내게서 눈을 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셨다. 힘들 때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을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왔다. 그렇게 어디에서든 자신감을 가지고 다만 겸손하게 다가갔다. 삼학기제를 가진 이 학교에서 첫 학기를 마쳤을 때, 나는 3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숙제도 꼬박꼬박, 수업도 열심히 들었기에 성적은 A~B 사이가 나왔다. 한국 학교에서 3~5등급을 받았던 나로서는 참 뿌듯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 나는 세 명의 친구들을 사귀었다. 내가 말을 못 알아듣고 말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간 만족스럽지 못한 한 학기를 마치고 이번 학기는 더 용기내고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나는 두 번째 학기를 시작했다. 수업 첫날 영어수업에서, 나는 수업 중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기만 했다. 전자사전으로 단어의 뜻은 찾아볼 시간도 없이 수업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앞으로는 어떡하나 하는 막막함과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절망감이 다시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영어선생님은 나의 호스트에게 나의 수준에 맞게 좀 더 쉬운 반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 권유는 타당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고 더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수업부터 선생님께 내일 배울 프린트를 미리 달라고 부탁해서 집에서 미리 예습을 하고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서 학교에 갔다. 단어 시험 너무 어려워 참여하지 못하고, 그냥 써서 갈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에 한 권씩 읽는 소설책도 한 장 읽는 데에 20분이 걸렸고 거의 매일 에세이를 써야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불러서 다음 주 부터는 정말 따라가기 힘든 수업이 될 거라고, 지금이라도 반을 바꿔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두께 6센티의 교과서수업을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의 권유를 정중히 거절하고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교과서를 빌려 매일매일 예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쓰는 에세이, 과제물마다 90점,100점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도 정말 열심히 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이때쯤 되니 자신감이 붙고 서서히 말귀가 트이기 시작했고 나는 친구들이 하는 말들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내가 하는 말은 느리고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반 친구들은 차근차근 내 말을 들어주었고 서로서로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나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아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 쉬는 시간 5분에 대 여섯 번씩 인사를 하게 되었다.이중에 같은 합창부 친구들은 나를 보면 “Yean, I love you, you’re my favorite!” 하며 하트를 쏘고 환호해주며 두 살 어린 같은 반 친구는 웃기지만 청혼을 했다.
내가 미국 학교에 와서 가장 즐거웠고 보람찼던 일은 합창부에 들어간 것이다. 나 하나가 아닌 모두의 목소리를 하나로 전문 합창단 수준의 곡을 완벽하게 합창 했을 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맞추며 협력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 벅찼던 가슴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여러 콘서트와 대회를 참가하면서 우리는 합창으로 공부에서는 배울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우리가 만들어낸 하모니를 가슴에 새겼다. 내가 콘서트에서 하나된 목소리로 노래했을 때, 나는 감동과 희열을 느꼈고 작년 겨울 내가 했던 그 무모한 선택에 대해 기쁨을 느꼈다. 한국 학교에서는 도저히 배우기 힘든 것들, 항상 경쟁만 하느라 지쳤던 나에게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정말 내 인생에 남을 잘한 선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