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 미국교환학생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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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환학생 유학생활 이야기] 값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 미국교환학생 (2)
미국교환학생 컨설턴트 이은수 2015년도 1월학기 미국교환학생 김예은 5월 무렵, 그렇게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너무나도 고마운 우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다가왔다. 부모님은 내 세상의 하나의 큰 기둥이다. 우리 집은 부모님께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계신다. 작은 방 두 개 뿐인 집에 공부방을 동시에 운영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책상 옆에 이불을 펴고 자고 옷장, 가구들을 모두 작은 방 하나에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야 이렇게 말 할 수 있지만 내가 중학생 때에는 괜히 부모님이 창피하기도 했다. 부모님께 반항하고 무시하기를 중학교생활 내내 했던 것 같아 너무 죄송하다. 그리고 작년 가을 부모님은 옆 단지의 큰 집을 신청하셨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 가는 것으로 큰돈이 들었고, 부모님은 그 고역을 몇 년은 더 하시게 되셨다. 내가 여기 와서 좋은 성적을 받을 거라는 보장도, 내가 혼자 생활하며 보람찬 1년을 보낼 거라는 보장도 없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시며 나를 여기에 보내신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마음과 나의 행복한 생활을 부모님께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 예고편과 영화, 이 두 개의 UCC를 만들기로 했다. 이 때 정말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이 내 친구들과 음악선생님이시다. 나는 학교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약 90명의 친구들의 참여를 받았다. 모두들 난생 처음 보는 한국어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주었다. 음악선생님 Durkin씨는 자신의 수업시간을 내주시며 내가 한국어 문장을 친구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 해주셨고, 또 배우는 친구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직접 말을 따라 해주셨다. 모두의 참여에 힘입어 나는 좋은 동영상을 만들 수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기념일을 축하받으셨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친구들과 더욱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 동영상을 보시고 우리 부모님은 눈물 흘리시며 기뻐하셨다고 했다. 당신들은 나를 낳으시고 수많은 기회를 포기하시고 지금의 생활을 하시면서도 겨우 2분도 안 되는 이 동영상에. 정말 미안하고 사랑하고 감사드린다. 나는 두 번째 학기가 되어 피아노반을 신청하기도 했다. 호스트의 집에 피아노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피아노수업을 듣지 않으면 피아노를 칠 기회가 없어서 점심시간에 점심대신 피아노를 쳤다. 나의 장래희망은 지리학분야에서 일하는 것이지만 피아노는 나의 평생 취미이다. 나는 미국에서 답답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피아노를 치고 그 멜로디를 들으면서 힐링했다. 그렇게 피아노를 치다보니 반 친구들 중 내가 피아노를 제일 잘 치는 꼴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피아노는 내가 친구들을 사귀고 친구들이 내게 다가온 계기이기도 하다. 나는 합창부에서 한 곡을 맡아 피아노를 연주했다. 콘서트까지 열흘도 채 안남은 시간이었지만 열심히 연습했다. 친구들은 나의 연주에 환호해주었고 고맙다 며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힘들지만 보람찬 연습을 끝으로 나는 콘서트에서 합창곡을 연주했다. 친구들의 목소리와 나의 피아노 연주가 만들어낸 화음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일을 계기로 음악선생님께서는 내게 대학 장학금 수여식의 피아노 연주와 학생들의 행진곡 연주를 부탁하셨다. 피아노가 그저 취미인 나로서는 정말 뿌듯한 일이었다. 음악선생님은 호스트의 집에 나에 대한 칭찬과 격려에 대한 우편을 보내시기도 하셨다. 나는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학교에서 열리는 커피 하우스라는 콘서트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오디션을 봐 합격을 하고, 커피 하우스의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는 것이다. 커피 하우스의 준비를 돕고 무대를 즐기며 나는 정말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내가 빠른 비트의 곡 연주를 끝냈을 때,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주었다. 주말에는 호스트의 가족들과 함께 미니골프, 서커스 공연 관람, 해수욕 같이 많은 야외 활동을 즐겼다. 그중 하나 정말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ISE 교환학생 모임 풀 파티였다. 미국에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금방 친한 친구가 되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진도 찍고 음식도 먹었다. 우리는 팀을 나눠 배구도 하고 수영장 풀에서 다이빙, 비치볼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모두 교환학생 참가 시기가 달라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남을 가진 것이다. 나는 그 친구들과 페이스북 친구들 맺었고 우리는 모임이 끝난 지금, 모두 각자 자기의 나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교환학생 친구들 중 한명은 보스턴공항 출국시간이 애매해 우리 호스트의 집에 하룻밤 머물렀는데 우리는 영화도 보고 한국 음식점도 가며 여기서 느꼈던 보람 있던 일, 재미있는 친구들, 미국에서의 일상에 대해 밤새 이야기 했다. 모두들 자신이 있던 안정한 자리를 버리고 말도 안통하고 누구 하나 아는 사람도 없는 타지로 직접 몸을 부딪쳐 그 문을 연 친구들이다.같은 고난을 겪고 극복하며 여기까지 온 그 가슴 벅찬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한 번 이 돈 주고도 못 살 값진 경험을 하게 해준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고마웠다.
지금까지도 내 그릇에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은혜가 넘쳐흘러 다른 그릇까지 적시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매일매일 합창 반을 드나들던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심포닉 밴드를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색소폰, 플롯, 베이스 같은 멋있는 악기들이 많았지만 나는 한 악기에 눈이 꽂혔다. 내가 항상 관심이 있는 피아노를 닮은 아주 큰 실로폰을 본 것이다. 그 악기의 이름은 마림바였다. 마림바는 타악기의 결정체 같은 악기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음으로 곡의 연주가 가능했다. 나는 곧바로 마림바를 연주하는 학생을 찾아가 친구가 되었고 그 친구는 방과 후마다 나에게 마림바 레슨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에게 방과 후에 하는 타악기 수업의 마림바 선생님께 나를 추천해 주었고 나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행복하게 나날을 보내던 중 학기의 끝물이 되었다. 합창 부는 옆 반인 밴드부와 함께 학기 끝물에는 반 대항 올림픽을 한다고 한다. 그 올림픽은 정말 신났다. 반 대항 레이스, 파이 먹기, 뮤지컬 체어같은 여러 재미있는 게임을 했고 여기서 내가 추천한 신문지게임이 큰 재미를 주기도 했다. 이렇게 정말 많은 친구들을 아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고 이쯤 되니 가는 길마다 모르는 친구들도 나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나는 아직도 그 열렬한 응원과 협동심, 경쟁을 잊지 못한다. 학기가 끝나고 나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점수를 받았다. 상상도 못했던 올 A를 받은 것이다. 두 번째 학기가 너무 재미있고 행복해서 너무 빨리 지나갔는데 하루하루를 열심히 하다 보니 그런 점수가 나왔다. 정말 하나님께서 내게 넘치는 은혜를 쏟아 부으시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행복한 두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았다. 출국일 을 기다리며 친구들과 파티에도 가고 마림바 수업도 들었다. 그리고 하나, 나는 아빠가 보내주신 초등학교 때 쓰던 글라스데코로 내 노트북을 꾸미기 시작했다. 미술을 시작한 것이다. 도안을 그리고 투명코팅지에 글라스데코로 열심히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완성! 내가 여기서 배운 가장 큰 하나는 ‘하나님께서 내 뒤에 계심을 믿고 하면 된다’ 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