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준] 미국 교환학생, SKY를 여는 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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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환학생, SKY를 여는 문이었다
Lisbon Regional High School (NH) 미국교환 연세대학교 권혁준 그동안 1,500여명의 교환학생을 선발하며, 남학생들이 선뜻 참가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2가지로 간추릴 수 있었습니다. 1. 친한 친구들을 떠나기 싫다. 2. 복학하면 대부분 학년을 내려가는데, 나는 동생들과 같은 학년으로 다니기 싫다. 혁준이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혁준이 누나가 먼저 교환학생에 참가하여 월등한 영어실력과 행복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자, 혁준이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보낸 교환학생을 보니 70%는 여학생, 30%는 남학생인데, 보통 여학생들은 일찍부터 미래에 대한 생각이 트여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남학생들은 친구를 좋아하다보니 부모님 손에 끌려옵니다.) 당시 혁준이의 얼굴은 가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혁준이는 영어능력은 살면서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넓은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생각에 미국이라는 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위의 2가지 이유로 인해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선배들의 대학합격과 내신,영어성적향상 사례를 듣고나서 간신히 용기를 내었지만, 혁준이는 결국 출국 1주일도 남지 않은 때에 다시금 저희를 찾아와서 취소하면 안되겠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수속절차가 완료되었고 호스트가정도 배정된 상태에서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라는 것을 알게된 혁준이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좌충우돌 유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학교에서 첫 수업을 듣고난 혁준이는 “아..선생님이 뭐라시는지 하나도 안들려... 진짜 괜히 왔다...”라는, 미국에 온것에 대한 후회를 처음으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첫 1개월을 그럭저럭 이겨내자, 슬슬 귀가 뚤리고 3개월 뒤부터는 입이 열리고, 영어로 꿈을 꾸며, 영어방송이 한국어로 들릴정도의 자동번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학교친구 Dan과 함께
홈스테이생활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동안 스스로 일어나기는커녕 무엇이든지 식사, 빨래, 청소, 용돈까지 무엇이든 친어머니께서 해주는대로 받기만 했던 혁준이는, 미국에서는 스스로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도우며, 청소, 빨래 등 직접하는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해본적이 없다보니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막상해보니 '좀 귀찮아서 그렇지, 전혀 어렵지가 않네...우리 부모님이 날마다 이렇게 고생해주셨구나..내가 왜 진작에 안해봤을까?' 라는 생각이 밀려왔고, 혁준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낼수 있다는 진정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홈스테이생활은 정말 인격훈련의 장이었습니다. 혁준이는 호스트어머니를 한국어머니처럼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호스트어머니가 늦게 집에 들어왔을때는 “왜 밥을 안해주고 갔어요?”라며 따지곤 했습니다. 일반적인 청소년이 외국인 어른에게 보이기 어려운 태도죠? 혁준이는 호스트가족과 매일같이 티격태격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스트와의 갈등은 결코 불행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혁준이와 호스트어머니는 서로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기때문에 결국 호스트어머니를 친어머니로 생각할만큼 가까워졌고, 전날에 호스트어머니와 다퉜어도 다음날이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로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 정말 한국의 친어머니와 같을정도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친가족처럼 느껴지는 혁준이의 호스트가족
미국과 한국고등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중 1가지로 다양한 액티비티 참가를 꼽았습니다. 혁준이는 액티비티로 축구팀에 참가했다가 다리를 다쳐서 1시즌을 쉬게 되었습니다. 휴식기간동안 혁준이는 필드에서 뛰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때 문득 좋은 스포츠용품과 유니폼을 제작하여 사람들이 편안하고 건강하게 운동할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혁준이에게 스포츠과학연구원이라는 꿈을 갖게 하였고, 그와 관련된 학과를 찾다보니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연세대 공과계열의 신소재공학과를 찾게된 것입니다. 스포츠과학연구원의 꿈, 축구공과 함께 꾸게 되었다. 혁준이는 처음 유학결정을 어렵게 하였던 위 2가지 고민에 대한 해답을 말해주었습니다. 1. 친한 친구들을 떠나기 싫다. → 미국에서 훨씬 더 좋은 친구들을 얻었고 1년밖에 안되는 기간이므로 금새 돌아와서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2. 복학하면 대부분 학년을 내려가는데, 나는 동생들과 같은 학년으로 다니기 싫다. → 미국에 있다보면 나이에 관계없이 상대방으로 'You'라고 부르며 존칭을 쓰지 않는 문화에 익숙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돌아온 혁준이는 전교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혁준이가 머리가 좋아서일까요? 물론 그럴수도 있겠죠. 그러나 혁준이의 대답은 바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선배로서의 긍정적인 부담감과 책임감’이었습니다. 미국까지 다녀왔는데 한국에만 있었던 게다가 동생들인 학생들보다는 잘해야한다는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왔다는 것입니다. 마치 전역한 복학생들이 배수의 진을 치고 열심히 사는 것, 부모가 자녀를 낳았을 때 느껴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매우 유사하죠. 그리고 처음 높은 점수를 얻어보니, 그것이 긍정적인 부담감을 주어서 쉽게 점수가 내려가지 않게 자기관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Prom(무도회) 참가하여 호스트엄마와 친구들과 함께
출국전 2가지 고민을 가졌던 혁준이는 단 1년의 경험동안 4가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1. 꿈과 목표 발견 2. 자립심 획득 3. 대인관계력 습득 4. 명문대 합격 인생이란, 이렇듯 순간순간의 작은선택이 모여서 하나의 큰 미래의 그림을 완성하게 됩니다. 우리 작은 선택의 순간마다 갈등과 두려움이 언제든 도사리고 있으나, 그만큼 더 큰 미래가 예비되어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따뜻하고 열린마음으로 여러분의 노크를 기다리며 여러분만의 미래를 디자인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