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이기는 자가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다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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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고등학교유학] 자신을 이기는 자가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다 (1)
미국대학입학 컨설턴트 안주영 워싱턴대학교 경영학과 천세원
프롤로그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미국에 발을 들여 놓은 순간부터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던 대학진학, 그 꿈같던 희망이 이메일을 통해 속속 전해지자 기쁨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라는 중압감이 나를 짓누르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지난 3년간의 세월이 나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미국에서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끝내고 막상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통과대 앞에 서니 “울지 말자, 울지 말자!”라고 수도 없이 생각했건만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쉼 없이 두 눈가를 적셨다. 약해지지 않기 위해 그 누구 앞에서도 눈물 같은 것은 흘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나에게 가슴속에서부터 활화산처럼 눈물이 분출되게 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나의 호스트 가족들이었다. 우리는 이별의 순간 쉽사리 안녕이란 말을 하지 못한 채 20분을 끌어안고 있었다. 3년이란 시간의 미국유학은 나에게 성공의 방식,성공보다 중요한 실패에 대한 경험, 그리고 낯선 세계에서의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선물하였다.
유학! 그 꿈을 향해서 유학에 대한 나의 꿈은 공부보다는 외모에 보다 신경 쓰던, 중학교 3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 가면 항상 마음대로 햄버거와 피자를 먹을 수 있고, 들리는 얘기로는 놀면서도 수학의 황제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은 나에게 있어 미국유학을 꿈이자, 유토피아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불행하게도 나의 이 상상은 반은 들어맞아, 햄버거와 피자를 셀 수 없이 먹다 보니 나중에는 악몽이 되어버렸다.) 처음 나는 미국유학을 가기 위해 부모님께 별 이유를 다 대었지만, 나의 본의를 꿰뚫고 계신 부모님께서 허락해 주실 리가 만무했다. 그 후로 어쩔 수 없이 나는 중학교 학업에만 신경을 쓰며, 외국어 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한국 대부분 학생들이 그러하듯 학원을 집으로 삼아 공부에 전념했다. 기상, 학교, 학원, 숙제, 기상, 학교, 학원, 숙제, 나의 중학교 생활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 또 반복의 연속이었다. 그 반복에 대한 스트레스, 천성적으로 게으른 나의 성격, 잘못된 공부 방법 등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외국어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였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나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다고는 하지만, 어디 한국의 학생들이 보통학생들인가? 4당 5락도 부족하여 3당 4락의 각오로 공부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집념의 전사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진학실패에 대한 충격과 고지를 향해 돌진하다 미끄러져 버린 나의 지친 영혼은 더는 앞을 향해 달리기를 거부하였고, 공부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고등학교 1학년 기간을 허송세월로 보내버린 나를 지켜보시던 내 인생의 영원한 멘토이신 어머님께서 지원군을 자청하셨다. 포기하고 잊고 있었던 미국유학에 대한 꿈을 살려주신 것이다.
새로운 미국생활, 그 좌절과 극복 (1) “한국 교육정책은 나에게 맞지 않아. 역시 미국에 가야 공부를 잘할 거야.”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을 갖고 유학을 갈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금 바로 이 글을 덮고 유학이 아닌 다른 길을 알아보기를 권한다. 미리 유학을 간 친구들에게 들어 미국은 수학이 쉽고, 과제도 검사를 잘 하지 않으며, 체벌도 없다고 생각한 나 또한 마찬가지로 미국에 오기까지의 고난과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잊은 채, 약간 안일한 마음으로 첫 한 달을 보냈다. 하지만 그 한 달 후부터 나는 완전히 지옥과 같은 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친구들의 말대로 수학은 아주 쉬웠으나 영어로 쓰여 있는 서술형 문제나 주관식 문제는 문제의 의도가 헷갈려 제대로 풀 수 없었고, 숙제 검사를 잘 안 하는 것만 믿고 있다가 숙제를 게을리 해 깜짝 퀴즈에 무방비로 당하였으며, 체벌보다 더 엄격한 교칙에 쩔쩔매며 내 생에서 가장 긴 한 달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영어로 된 시와 고전영어 문법, 전문적인 과학용어들, 그리고 여러 은어는 영어만은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나의 자신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렸다. 교육과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면서부터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만약 내가 자각하지 못하고 단순한 문화적 차이로 치부했거나 그 충격을 방치하고 새로운 각오와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쯤 3년의 허송세월을 보낸 후 한국으로 되돌아왔거나 미국의 어느 뒷골목을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나중에 유학 온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친구 만들기이다. 친구는 그 무엇보다도 유학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중요도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졸업하기 전 나는 고등학교에서 가장 사랑 받는 아시아인이었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희생정신을 끊임없이 발휘해야만 했다. 처음엔 다른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친구 문제는 나에게도 아주 큰 고민거리였다. 대화를 시도하려 해도 우선 말이 생각대로 원활히 되지 않았고, 농담을 들어도 억지로 웃기도 어려울 정도로 뜻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으며, 그러다 보니 미국학생들도 답답한지 나를 피하는 눈치였다. 말하고 장난칠 벗이 없으니 점심시간에는 혼자서 쓸쓸히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쉬는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한 생활이 반복되니 나중에는 우울증에 걸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유학생활을 중도에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친구 만들기 작전에 적극 돌입하였다. 먼저 나와 같이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고 있을 전학생들을 상대로 말을 걸어 친해졌다. 그들도 나와 같이 새로운 환경에서 어색하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손을 내미니 바로 친구가 되어주었다. 또한, 반 친구들과의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 농담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검색했으며, 각종 스포츠와 클럽들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피아노, 태권도, 체스, 축구, 탁구, 큐브 맞추기, 심지어 펜 돌리기 등 나의 모든 재능을 동원하여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서 내가 모르는 학생이 나를 아는 경우가 수두룩해질 정도로 유명세를 탈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했음에도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길 때까지는 족히 1년 반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만든 친구들은 내가 어려울 때 항상 우군이 되어 주었으며, 유학생활 내내 수없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차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미국에서 호스트가족보다 친구들이 나를 더 많이 차로 데려다 주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은 성심 성의껏 설명해 주었으며,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을 때는 고맙게도 나보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피신오라고 할 정도로,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많은 한국 신문과 책들이 친구를 만들 때 속된 표현을 쓰자면 “그냥 들이대라”라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나는 전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냥 무턱대고 들이댔다가는 미국 아이들에게 광대취급을 받던지, 혹은 오히려 귀찮게 하는 것이 되어버려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오히려 시간은 좀 더 걸리더라도 그들의 문화양식과 사고방식을 우선 이해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희생과 봉사정신 발휘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한결 손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지름길이라 나는 확신한다.
7살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쳤던 피아노, 태권도 단증, 타고난 운동 신경 등은 한국에서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오랫동안 한 것을 포기하는 것보다 즐기며 하는 취미생활들을 버려야 하는 아픔이 더 컸다.흔히들 미국 아이들이 운동을 더 잘하게 타고났다 하지만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끊이지 않고 농구, 축구, 야구 등 취미생활을 공부만큼 하므로 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한 문화이다. 대학이나 직장들도 자연스럽게 학력 이외의 것들을 평가점수에 비중 있게 반영함으로써 다방면에 걸쳐서 취미생활 및 봉사정신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나는 이러한 미국을 천국이라 생각하며 한국에서 자주 즐겨 했던 농구를 하기 위해 학교농구팀에 지원했다. 2주일간의 농구시험은 무지막지하게 힘들었고, 난생처음으로 팀에 들려고 한 경쟁이었다. 그러나 중3부터 하지 않은 농구실력은 많이 녹슬어 있었고, 경기경험도 거의 없는 나는 결국 농구 팀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축구팀에 들어갔지만, 그마저도 나에게는 경기경험이 없다고, 주전 자리를 쉽사리 내주지 않았다.
그 후 난 단순히 대학에 내기 위한 이력서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또 나의 경쟁심을 불태우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였다. 학교가 끝나면 모든 숙제를 빨리 끝내고 체력단련을 하였고, 농구를 잘하기 위해 항상 드리블 연습, 슛 연습, 경기관람, 농구 용어들을 공부하며 훈련하였다. 그 결과 다음 해 나는 농구 팀에 안정적으로 합격했으며 축구에서는 주전, 그리고 오래달리기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선수가 되었다. 코치에게 인정받고 상도 받으니 나 스스로 해냈다는 생각에 어려운 시험에서 100점 맞았을 때보다 기분이 몇 배는 좋았다. 대부분 한국방식으로는 공부에 뒤쳐질까봐 정해진 체육 시간마저도 공부시간으로 바꾸는 게 현실이겠지만 나는 결코 운동 때문에 공부가 방해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운동을 하게 되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져 집중이 더 잘되고,체력이 느니 책상에 앉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경쟁심이 생기니 도전정신도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또한, 몸 관리를 위하여 식생활을 규칙적으로 하게 되어 더 건강한 정신과 몸을 가지게 되었다. 운동을 하게 되면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그 몇 배의 소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대학입학이나 기업입사 시 스팩으로 써먹을 수 있는 것 또한 덤으로 생기는 훌륭한 부수적 효과이다. 실제로 나는 유학 3년째 하프 마라톤도 도전하여 완주에 성공했고,생각지도 못한 AP 과목들도 몇 개 공부하는 등 학업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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