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쌤의 청소년사랑 열정스토리①] 부모곁을 떠나야 시작되는 “자녀의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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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쌤의 청소년사랑 열정스토리①]
부모곁을 떠나야 시작되는 “자녀의 믿음”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토크쇼인 포프리쇼를 진행하는 소통전문가 김창옥교수님은 본래 성악을 전공했었는데 처음 실패자에서 변화된 자신의 삶을 나누고 싶은 간절함으로 성악레슨을 하며 자신이 겪은 성공과 실패를 진솔하게 나누다가 점차 많은 강의를 하게 되고 지금의 명강사라는 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청소년시기의 실패와 좌절을 딛고 자신의 삶을 나눌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하나 없이 자신의 삶을 직면할 수 있었던 용기와 자신을 포기할 수 없었던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입니다. [김창옥의 포프리쇼]
저도 역시 부족하지만 청소년시기에 똑같은 어려움과 실패를 경험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와 열정으로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고 현재까지 13년간 중, 고등학생들과 함께 교육과 진로를 함께 고민하고 격려하며 사랑으로 섬기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소중한 경험들을 기회 될 때마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 밝은미래교육은 크리스천 교육기업이며 저 역시 교회 중. 고등부 교사로 오랜 시간 봉사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학부모님 중에는 크리스천 부모님들이 많으며 때때로 자녀교육에 대한 문의를 자주 받게 됩니다. 부모님께서 신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신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신앙적인 자녀교육에도 관심이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지난주 목요일밤 9시경 전화상담을 한통 받게 되었습니다. 고1 남학생을 둔 어머님의 화두는 아이가 모태신앙인데도 사춘기를 겪으며 신앙이 없어서 걱정이고 게다가 그런 아이가 만약 부모님을 떠나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게 된다면 더더욱 흐트러지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아이를 성경적 신앙 가치관으로 아이를 키워왔는데 아이가 고1이 되고나니 점차 어머님의 교훈과 훈계를 듣기 싫어하더니 최근에는 어머님께 “엄마가 저에게 하는 말은 항상 성경적으로 옳은 얘기를 하시지만 엄마의 생활이 그 말을 따라가지 못해서 싫고 전 그런 하나님은 더욱 믿고 싶지 않아요!” 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너무나 속이 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대체로 뜨겁고 열정적인 열린예배 분위기와 각종 수련회, 부흥회 등을 많이 경험할 수 있는 한국교회문화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정적인 미국의 크리스천교회문화와 더군다나 배정된 호스트가 크리스천이 아닐 경우에는 아이가 더욱 신앙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이왕이면 뜨거운 열정을 가진 크리스천들이 옆에서 함께 지내며 아이를 신앙적으로 끌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문제는 이 어머님의 경우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공감이 되면서도 정말 그것이 맞는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생기고 자라는 것이 과연 신앙적인 환경이 주어질 때에만 가능한 것인지 말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고 제가 만난 많은 분들의 경우에도 좋은 환경에 있고 삶이 편안할 때 보다는 각자 삶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 때가 가장 깊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늘 저의 마음 한켠에 아련했던 롤러코스터 같던 저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고 싶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교회에서 소위 신앙 좋기로 유명하신 분들이었고 현재는 아버님이 장로님, 어머님이 권사님, 형은 성경번역 선교사입니다. 다들 교회에서 눈에 띄는 큰 역할을 많이 맡으셔서 저희 가족이 하는 크고 작은 행동들은 지금도 교회 분들에게 주목받기 쉽고 노출되곤 합니다. 저는 엄격히 신앙교육을 시키니는 어머님밑에서 어릴적부터 주기도문, 사도신경 암송, 수련회 때 식사 전 요절암송, 여름성경학교 퀴즈 등 모든 대회를 석권할 정도로 승부욕이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전 딱히 학업이나 미래에 대한 목표의식 없이 현실에 끌려가는 삶을 살아왔고, 가고싶은 대학교는 당연히 마음은 상위권대학 이었지만 학업능력은 전혀 못 따라갔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수능점수결과에 맞춰서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으며 그곳은 나름 신실한 기독교인들만 모인다는 총신대학교였습니다. 일주일에 4회씩 불타는 열정의 학교예배를 드리는 최고의 크리스천대학교에 다니면서도 저는 행복은커녕 꿈도 없고 목표도 없이 남들 다하는 연애도 실패하고 모든 학업에서도 실패를 맛보게 됐습니다. 제 인생에 대한 원망과 신앙적인 회의감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방황하였습니다. 한때는 무지개보다 많은 10가지 이상의 다양한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기도 하고, 귀도 뚫고, 부모님 모르게 음주와 흡연을 하며 신세한탄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지옥 같은 삶을 견뎌내고 전역한 후에는 다시 새롭게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막상 복학 첫 학기가 되어보니 후배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과 공부를 따라 가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나 힘들었고 당시 식음을 전폐하고 몸이 병 날만큼 사모했던 여학생에게 솔직한 사랑고백도 한번 못하는 바보 같은 제 모습을 보며 극도의 낮은 자존감과 실패감과 함께 제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 2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이 되었을 때 동네 최고의 술고래였던 제 동갑친구가 군대에서 하나님을 깊게 만났다며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만큼 열정이 뜨거워진 모습으로 찬양팀을 같이 해보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친구에게 거부감이 들었지만 제 마음이 워낙 바닥까지 간 상태였는지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인터넷영상에 나오던 한 찬양인도자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더니 제 마음이 움직여져서 저는 난생처음 기타를 사고 싶은 간절함에 즉시 달려가 구입하였고, 하루에 5시간 많게는 10시간 가까이 손에 지문이 없어질 만큼 간절하게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타홀릭 염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세상에서 뭔가 쓸모없는 것 같이 느껴졌던 제 자신이 너무 싫어져서 단 한 가지라도 잘하고 싶은 게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속으로 울며 기타를 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절실함을 시작으로 약 2년간 교회와 학교 등 장소에 관계없이 거의 매일 울다시피 하며 기도하고 찬양하고 부르짖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실패한 삶에 대한 서러움과 창피함 등 남들에게 얘기하기 창피하였던 복잡한 감정들을 진실되게 쏟아내는 시간이었고,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처절한 눈물은 곧 자유함과 평안으로 바뀌었습니다. 저 자신의 부족함 그대로를 받아 들 일 수 있었으며 제 삶을 내가 아닌 그분이 가꾸어 가신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기분을 느낀것이 처음이었고, 고난과 불안이 와도 나에게도 나만의 진로가 있을것이라는 기대감과 소망이 지금까지 붙들어왔습니다. 정말 하늘을 날 것 같은 기쁨과 행복은 그때만큼 느껴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180도 바뀐 제 삶은 열정과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저는 청소년, 청년들을 볼 때면 언제든 격려해주고 도와주고 싶어졌습니다. 지금도 밝은미래교육에서 만나는 힘들고 치진 학생들에게 저보다는 방황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학생들도 자신의 무기력과 연약함만 바라보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며 권면하고 그들의 진로에 디딤돌이 되고자 열정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저의 지난날을 짧게나마 어제 통화 드렸던 어머님께 제 삶을 나눠드리며 저는 어머님께 “아이가 상처 드리는 말을 했지만, 사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심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얘기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좋은 신호임을 믿으셨으면 합니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23살이 되어서야 “내가 왜 교회를 다니지? 하나님이 없다면 내가 헌금을 왜 내고 그 분을 왜 찬양해야하지? 차라리 더 자고 놀면 되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겁이 났습니다. 나중에서야 이런 저의 모습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누군지 내가 몰랐고 두려웠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라는 분은 가장 진솔하게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아가고 찾을 때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날 만나주시고 평안을 주시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좋은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고1학생은 적어도 저보다 빠른 시간에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제 얘기를 들으신 그 어머님은 뭔가 말없이 숙연해하시며 제 얘기에 깊이 공감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옆에 부모님이 함께 계셔도 내 삶이 간절하고 결핍된 상황이 없다 라면 진정한 믿음의 출발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부모님 곁을 떠나봐야 참 부모 되시는 하나님을 찾게 되는 믿음이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학생들 중에는 여학생들이 부모 곁을 떠나 자신의 삶을 세워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뭐든지 챙겨주는 엄마 품을 떠나기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많이 지켜보곤 합니다. 이렇게 부모님을 떠나 홀로 스스로의 삶을 독립된 생활을 통해 자립한 학생들은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찾아올 때 오히려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고 믿음이 자라는 경우를 참 많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눈 뜨면서부터 잠들 때 까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중, 고등학생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마침내 성취감을 얻은 우리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존감을 갖게 되며 국내의 어려운 교육환경에도 잘 적응하며 자신의 미래를 가꾸어가고 있음을 매일같이 소름돋는 전율 속에 경험하고 있습니다. 귀국 후, 실제로 학교에서 석차등급이 오른 학생들도 많지만 학교에서 최상의 1등급 점수가 안 나 올지라도 이미 자신의 태도와 삶의 습관 점수는 1등급 이상의 생활을 해가고 있습니다. 해외가 아닐지라도 학생이 혼자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결국 신앙과 정체성을 모두 정확하게 확립하게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많은분들이 포프리쇼 김창옥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감동하고 열광하는 것은, 그 분의 강의에는 사람들의 실패와 좌절의 아픔을 공감하고 기다려주고 함께 인내해 주며 스스로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게 하는 여유와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관찰력이 그 분에게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우리학생들에게 공감선생님, 인내선생님, 기회선생님, 그리고 관찰선생님이 되어서 부모님 곁을 두려워서 못 떠나는 학생들과 자녀가 못 미더워 스스로의 독립된 삶을 세울 기회를 주지 못하는 부모님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열정선생님으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인천공항에서 부모님과 이별직전 큰절올리기 ]
2018.11.12 염성현 올림
크리스천 자녀성장매니저 프리미엄사전교육 수석영어강사 밝은미래교육 미국교환학생 컨설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