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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무부 교환학생 참가후기
생각의 틀을 바꾼 1년, 미국교환학생(1)

[미국교환학생 유학생활 이야기]

생각의 틀을 바꾼 1년, 미국교환학생(1)

 
 
미국교환학생 컨설턴트 이은수
2014년도 9월학기 미국교환학생 서혜승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하는 이유도 잘 몰랐던 나는 외국 유학의 필요성을 그닥 느끼지 못했었다. ​부모님이 유학을 권했을 때도 나는 돈 낭비 라며 거절하곤 했었지만 내 주위 친구들이 하나 둘씩 외국으로 떠나고,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는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대체 외국이 뭐가 그렇게 좋은가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친구들의 SNS를 통해 사진을 보게 되었고, 영화 속 에서 보던 학교내의 파티, 교복을 입지 않고 대학교처럼 수업을 찾아 매시간 교실을 옮겨 다니는 모습 이 새로워 보였던 나는 미국 학교를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중학교 선생님의 아들이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선생님께 밝은미래교육을 추천 받게 되었다. 부산에 사는 나는 서울로 올라와 밝은미래교육 선생님과 상담을 받고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교환학생을 위한 복잡한 서류, 그리고 몇 가지 의 필요한 수업을 듣기 위해 부산과 서울을 자주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 고등학교 1학기를 마무리 했고 그러던 중, 내가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가스 에 배정을 받았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내가 함께 지낼 호스트부모님은 두 분 다 공군 이였으며, 집에 아이는 없고 강아지 두 마리 고양이 두 마리, 동물 총 네 마리를 기르시는 가족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며 일 때문에 이미 해외를 정말 많이 가봤고 해외에서 만나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가게 될 학교는 라스베가스 에 있는 Shadow Ridge High School 이며 라스베가스 에 있지만 외곽이라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학교의 규모는 정말 컸다. 학생수가 약 2600명이 된다고 하였고, 학교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각종 운동 팀 도 많이 있었다. 동부지역으로 가고 싶어 했던 나는 내가 서부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학교에 정말 기대를 많이 했다. 메일을 받고 약 1주뒤에 바로 출국 해야 한다는 소리에 친구들에게 인사도 못한 것이 정말 마음에 걸렸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호스트 맘 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많은 질문들을 하였지만 교과서 영어에 익숙했던 나에게 미국 현지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너무 어려웠다. 내가 알던 영어와 미국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영어는 정말 달랐고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영어와 거리가 너무 멀었으며 듣기평가 할 때 의 목소리와 다른 목소리, 그리고 다른 억양은 나에게 정말 이해하기 힘든 영어였다. 가끔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에 알아듣는 척을 한적도 있었고, 화장실을 간다는 말 조차도 잘 하지 못했다. 상대방에게 감사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 않았던 나에게 ‘Thank you’ 라는 표현은 너무 멀고 힘들게 만 느껴졌고,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미국에 적응 했는지 궁굼 했다. 그 친구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학교에서는 쉽게 적응 할 수 있을 것이란 내 생각과는 달리 적응이 힘들었고, 이러다가 중도 포기를 하고 한국으로 곧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 할 때 마다 정말 당장 한국을 가고 싶었고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이렇게 힘든 시간을 며칠 보내던 중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내가 괜히 미국이라는 먼 나라에 왔다는 이유로 너무 겁을 먹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은 대부분 적응 을 잘 했는데 내가 너무 미국을 두려워 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나는 학교에서 사귄 몇몇 안 되는 친한 친구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았고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모두 그런 착한 친구들인데 내가 괜한 겁을 먹어서 친구들이랑 잘 이야기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있던 학교는 규모가 작지 않은 큰 학교라서 동아리도 많았다. 나는 그 중 교환학생이 많은 동아리인 International club 에 참여를 하였다. 클럽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교환학생 친구들 이었고 같은 교환학생 이라는 이유로 친해졌다. 대부분 유럽친구들 이었고, 아시아에서 온 친구는 나를 포함해 두 명 밖에 없었다. 유럽친구들은 아시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었고, 나 또한 한국에서 들고 갔던 선물과 사탕을 그 친구들과 교환하며 유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또 다른 클럽 중 하나인 Key Club 에서는 자주는 아니 지만 가끔 다같이 모여 봉사활동 을 가고는 했다. 친구들은 내가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 이라니까 정말 잘 대해주고, 내가 영어를 잘 못해도 이해를 해주며 항상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렇게 친구들과는 잘 지냈지만 문제는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 이었다. 진작 영어공부 좀 할걸, 단어 좀 열심히 외울걸 그랬나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던 중, 미국에서의 첫 성적표를 받았다.


​성적 확인을 하던 나는 무엇 보다 내가 모든 수업을 패스 했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성적은 A부터 D까지 골고루 있었지만, 내가 A를 받았다는 점이 웃겼다. 공립 학교는 학점을 받기 쉽다고 많이 들었고, 선생님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점수를 후하게 주신 것 도 있겠지만,나는 한국에서도 그다지 공부에 흥미가 없던 터라 성적에 대한 목표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에 있을 때 내 목표는 전교생 300명도 되지 않는 학교에서 100등 안에 들기. 이런 작은 목표였고 나는 턱걸이로 그 목표를 겨우 이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선생님들이 유학생 한 명 살리자 고자 점수를 많이 주셨겠지만, 나는 내 성적이 C로 도배가 돼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좋은 성적표를 받고 나니 조금은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한번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공부만 조금 해볼까?’ 라는 호기심이 머리 속을 맴돌았고 영어공부를 하긴 정말 싫었지만 어디 한번 보자 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해보았다. 물론 그런 생각이 오래 간 것도 아니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적어도 수업시간에 배우는 건 잘 알아듣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사전과 함께 수업에 집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