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여고 1학년 출국
Bad Axe High School (MI주) 교환학생 1년
안양여고 졸업
교환학생을 가기 전 고등학교에 진학한 주희는 중학교때처럼 막연히 잘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현실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그러나 교환학생을 참가하면서 정말 좋은 호스트부모를 만나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되고 다른 사람과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귀국 후 미국앨범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본사를 방문한 주희 얼굴에는 환한 미소와 자신감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① 중학교 때처럼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자만했다. |
교환학생을 가기에 앞서, 지금 생각하면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로 남는 것은 제가 준비 없이 출국했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꽤나 좋은 성적을 받았었던 저는 2013년도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미 미국 교환학생으로 갈 호스트 배정까지 다 받은 상태였으며, 교환학생 갈 준비로 바쁘다는 핑계 삼아서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처럼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자만한 생각에 정말 고등학교 공부를 무지 설렁설렁 했었고 미국 가기 전에 애들 얼굴 한 번 더 봐야 된다는 마음에 그저 놀러 다니며 시간 소모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런 와중에 먼저 고등학교 성적표를 받아보고 좌절을 했던 것도 있고 지금 생각을 하면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울 걸 하면서 지난 시간이 후회로 많이 남습니다.
그렇게 설렁설렁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2013년 여름이 다가오고, 저는 교회에서 몽골선교 갈 준비를 하며 미국보다는 선교 준비에 집중했고 사실 교회 가는 시간 외에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선교 준비 바쁘다는 핑계로 미국가기 직전까지 단어조차 외우지 않는 나태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미국가기 일주일 전까지 교회에서 다녀온 일주일간의 몽골선교를 통해 하나님은 정말 많은 것들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러 간 자리에서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느끼고 온 몽골선교 일주일 후 8월23일, 영어공부는 커녕 단어 하나 제대로 잘 알지 못한 채 가족도 친구도 없는 미국 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날의 기분은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하는 그 기대와 하나님의 대한 사랑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렇게 교환학생 기간의 첫날을 시작했고 그 기억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② 웃음으로 때워 넘기다. |
그렇게 가족 품을 떠나 비행기를 탄 그 순간 그제야 진짜 가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고, 실감 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하나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도착한 순간부터 하나에서 열까지 다른 환경과 들리지 않는 영어에 그저 알아듣는 척하거나 웃음으로 때워 넘기기 마련이었고 도착한 뒤 일주일 뒤 가게 된 학교는 정말 친구도 없고 수업내용도 하나도 안 들리고 숙제 하나 하려고 하는데도 숙제가 뭔지 알아듣지 못해서 못해가는, 심지어 솔직하게 학교 락커조차 어떻게 여는지 몰라서 헤맨 그저 좌절감만을 느끼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환경과 상황들이 적응도 안 되기도 하고 싫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호스트 부모님 직업상 집에서 먼 학교를 가야 해서 더 일찍 일어나고 학교에 일찍 가야 한다는 것, 방과 후에도 호스트 맘의 레슨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엔 정말 싫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한 달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안 되니깐 그래서 조급한 마음들이 너무 커져서는 괜히 더 짜증 나고 그랬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성숙해지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정말 없구나 하면서 내가 생각한 대로 해야 한다는 그 자만했던 마음들을 다 내려놓고 적응하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가족이나 친구 하나 한국인 하나 없는 자리에서 힘들다고 할 곳도 없고 의지할 곳은 정말 하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저는 큐티와 기도를 매일같이 하면서 정말 그 믿음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놓지 않고 나아갔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자는 마음을 크게 하고, 지금까지 해 온 것도 없지만 그런 만큼 여기서는 정말 제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임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미국 땅에 진짜 왔는데 인제 와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어리석은 내가 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을 하였고, 그렇게 미국 도착하자마자 느낀 좌절감을 통해 그만큼 독하게 그리고 빠르게 이겨내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영어나 언어 부분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말도 못 하고 단어도 모르고 하는 상황에서 아주 힘들었지만, 확실히 시간이 약이듯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식 사고방식을 알아 갈 수 있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보내면서 그들의 영어가 진짜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한국의 주입식 교육 같은 건 확실히 실제 대화에서는 큰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하면서 말하는 것들이 늘어가면서 교환학생 생활 4~5개월쯤 되었을 때 조금씩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수해도 계속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 친해진 친구들이 발음이나 문법 사항들을 고쳐주고 하면서 또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실수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질 수도 있지만 사실 실수를 통해서 머릿속에 남는 것들이 더 쉽게 암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나중에 돼서는 친구들이 가끔 발음이나 문법 같은 거로 장난삼아 놀리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그것들도 이젠 다 장난으로 받아칠 줄 알게 되면서 그 정도로 친해질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언어 이외에도 가장 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자기주도 학습입니다. 호스트 가족과 어우러져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해가면서 사는 것도 그렇고, 스스로 일어나고 자기 일을 하는 것도 그렇고, 저는 미국 가기 전 밝은미래교육 행사 중 학과전공세미나에서 했던 MBTI성격유형와 STRONG흥미검사 결과를 통해 자기 자신의 전문성과 장단점에 대해 배웠습니다.
저는 이것을 통해 저 자신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었는데, 그렇게 내 성격의 장점들을 더 좋게 만들자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가면서 생활하는 습관을 세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틈을 주지 말자고 하면서 하루에 해야 할 것들을 모두 매일같이 스케쥴러에 적어놓고 체크해 가면서 또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교환학생 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또 수업시간 같은 경우에는 숙제와 틈틈이 해야 하는 퀴즈와 테스트가 학기말 Final Exam보다 비중이 클 정도로 중요하며 평가점수 대부분이기도 합니다.
학교에 어떠한 이유로 빠지게 되면 놓친 숙제나 레슨 같은 것들도 스스로 찾아서 해나가야 하며 사소한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자기의 일을 스스로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구나 하는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행동은 스스로가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에서 자립하고 조절하는 것을 시작하면서 자기주도 학습을 해나가며 스스로 성장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환경 가운데에 살아간다는 게 적응도 되지 않고 힘들기도 하였지만, 그것들이 적응되어가면서 시간 관리와 해야 할 것을 철저히 해 나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경제적인 부분들에서는 옛날 같으면 생각 없이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하고 싶은 것들을 했던 것에서 주어진 돈 안에서 꼭 사야 하는 것들을 사고, 사고 싶은 것들을 스스로 절제하고 자립하는 법들을 배워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가장 문제였던 부분과 또한 미국 교환학생을 가게 되면서 가장 소망했던 것은 나의 시야를 넓히고 꿈을 찾는 부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지내고 있다가, 학교에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1교시 영어 시간에 대부분의 교환학생이 함께한 시간에 선생님께서 한 명 한 명 물어본 것이 교환학생으로 여기 온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는 거였습니다. 그때 다른 아이들이 다들 하고 싶은 것들을 말하는 것에서 나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또,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넓은 세상을 보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혀서 꿈을 좀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들이 커지고, 그때 이후로 내가 하고 싶은 건 정말 뭐지 내가 이렇게 살면서 대체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고민을 매일 시작했고, 어쩌면 나와 같은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맞는 직업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솔직하게 아직 확실하게 꿈이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 있었을 때는 스스로 딱히 좋아하는 것들도 없었고 취미도 딱히 없었고 그냥 시간이 흐르던 대로 다른 고등학교 친구들이 하는 대로 다들 그렇게 하니까 따라서 해오던 것들에서 이제는 조금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서 할 수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무언가 목표가 생기게 되고 더 삶의 이유를 찾게 된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어려웠던 과목은 English와 American History였는데, 저희 학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교환학생이 꽤 많은 편이라서 학교 자체에서 교환학생들을 전부 12학년 senior반에 넣어서 English 수업은 12학년들과 듣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안 되는 영어인데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공부하고 숙제로 매일 에세이를 써야 하는 12학년 반에 함께 있어서 가장 어려웠었던 과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숙제도 하기 싫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처음에 에세이에서는 100포인트 중에 거의 반타작 수준의 점수를 받았었습니다.
좌절도 잠시 그런 만큼 정말 매 수업시간이 끝날 때마다 선생님께 가서 물어보고 참고할 수 있는 자료 있으면 다 받아서 도움받고, 또 4교시에는 자습하는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을 활용해서 또 선생님께 물어보고 도움받고 해가면서 점차 에세이 하는 것을 해가고 하면서 5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글쓰기 실력 많이 좋아졌고 칭찬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에세이를 책을 읽고 하는 거였는데 책도 못 읽고 '영어를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책을 어떻게 읽으라고 나보고 그러는 거야' 하는 마음에 좌절하고 눈치 보며 따라 하기 바빴었던 제가 학기 말에는 남들보다 성실하게 에세이를 해서 제출하고, 남는 시간에는 선생님께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읽을 정도로 많이 향상되고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American History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책을 읽고 요약해오는 숙제여서 단어만 찾는데 진짜 몇 시간씩 가고 단어를 찾았음에도 이상한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 되고 해서 어려움이 컸었는데 이 또한 많이 질문하고 물어보고 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American History에서는 잦은 Quiz와 Test를 봤는데 처음에는 그냥 답을 죽으라고 외워서 어찌어찌 퀴즈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아냈었지만 챕터하나가 끝날 때마다 보는 Test에서는 참 절망적인 점수를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선생님께 질문하고 이것저것 도움받고 하면서 진짜 죽어라. 외우다 보니 이해가 돼가기 시작하고 또, 항상 챕터 하나가 끝나고 Test전에 이따금 애들끼리 조를 짜서 문제 맞히기를 해서 가장 높은 점수인 팀이 Extra Credit을 받는 그런 게임이 있었는데 그 게임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여서 Extra Credit 까지 받아가면서 좋은 성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단어 외우는 것이 중요한데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고 진짜로 중요한 건 물어보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진짜 모르는 거 있으면 솔직하게 다 물어보는 게 진짜 좋은 방법인데, 전 정말로 선생님들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면서 질문했는데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어떤 선생님들은 더 이해하기 쉽도록 다른 아이들한테는 안 준 자료도 내게 주셔서 질문하는 게 생각보다 많은 이득이 되었습니다.
전 외국어를 Spanish도 선택했었는데 좋은 점이 Spanish를 배우다 보니 영어 단어를 외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담당 선생님이 재미있게 가르쳐주셔서 그룹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아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또, 1학기에 선택한 P.E.(체육시간)에서도 친구들과 아주 친해졌고, Choir(합창단)와 2학기에 선택한 Band를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고 많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Choir 와 Band 모두 festival 에 가서 가장 좋은 성적인 1등을 해서 메달을 받기도 하고 다른 곳에 초대 돼서 공연하기도 하고 콰이어 크리스마스 콘서트 그리고 콰이어와 밴드 스프링 콘서트를 하면서 재미있는 추억들도 많이 쌓았습니다. 특히, 같은 음악적 취미를 가지고 함께 연주하고 노래를 하면서 친구들을 더 친밀감 있게 사귀게 되었습니다.
④ 외국에서 온 교환 학생들과 친구가 되다. |
미국 국무부 교환학생을 참가하면서 기대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는데, 그것은 다른 국가에서 온 교환학생들과도 많이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다른 나라에서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온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왔었기 때문에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보다는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과 친해지기가 쉬웠습니다. 서로 가족들과 떨어진 상황에서 이해되는 것도 비슷했고, 각각 자기 나라와 미국문화가 다른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먼저 다른 교환학생들과 친해진 저는 그 아이들이 사귄 미국인 친구들과 또 제가 사귄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먼저 미국인 아이들에게 말을 걸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교환학생 친구들이 함께 있어서 미국 친구와 빠르게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교가 교환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해 줘서 홈커밍 때는 교환학생들끼리 모여서 퍼레이드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희 학교뿐만 아니라 미시간주 내에 있는 다른 교환학생들이 모여서 하는 프로그램에 꼭 참여해야 하는 그것들이 많았는데 크리스마스 파티, 피자 만들기나 international dinner같은 것들도 함께하고 또 봉사활동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재단에서 했던 봉사활동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피자헛에서 일을 돕고 받은 팁을 기부하는 봉사활동으로, 제 역할은 음료 주문을 받아서 음료와 포크 접시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서빙을 하고 서빙을 한 뒤 음식 주문을 받아서 주방에 음식을 말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한번은 음료를 서빙하다가 손님 앞에서 바닥에 엎어버리는 실수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분들은 저희가 교환학생들인 걸 알고 계시니까 저한테 다 괜찮다고 하셨지만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만약 이게 진짜 일하는 상황이었으면 난 대체 어떻게 됐을까 민폐를 끼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손님들이 그나마 적게 오는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일을 하게 되고 밀려오는 피곤함과 옷에 완전히 배어버린 피자 냄새도 싫었고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본 적 없던 제겐 참 돈 벌기 힘들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전까진 아르바이트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이걸 매일 몇 시간씩 해서 돈을 벌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마음과 부모님께서 저를 이곳 미국 땅에 보내시려고 그렇게 힘들게 일하신 걸 저한테 투자하셨구나 하는 마음에 정말 미안하면서 감사했습니다.
사실 그전엔 여기 오게 된 것이 여기서 내가 스스로 고생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뿐 이었지 부모님께 감사를 많이 느끼거나 표현하지도 않았는데 그날 피자헛 봉사를 하면서 어른이 돼서 일한다는 그것은 아주 힘들구나 하는 마음이 들며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⑤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행복하다. |
재단에서 한 행사 외에도 저는 Food pantry, Fundraiser, Holly berry fair라고 물건을 팔아서 기부하고, 또 shoe box라고 내용물을 박스에 채워서 보내고 싶은 성별과 나이를 선택해서 일종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느 나라의 어떤 아이한테 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장난감을 하나 고르면서도 전쟁지역에 있는 아이들에게 가는지 모르니까 장난감 총이나 칼 같은 건 안 된다는 설명에 안타깝기도 했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구나! 또 배려심이 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박스를 포장하면서 나는 지금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는 한국 학생이라고 편지도 써서 넣었으며, 영어라서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 또 아이에게 갈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되게 뿌듯했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았던 것은 우리 교회에서 매년 해오던 것이라고 하는 크리스마스 봉사였는데, 크리스마스이브에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크리스마스 오전에 요리해서 점심시간에 남녀노소 누구나 그렇게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도 다 와서 음식을 먹으며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초라한 차림새의 분들이나 몸이 아프신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저는 그 음식들을 준비하고 만들고 나눠주고 또 그런 분들을 보면서 적어도 그들이 크리스마스 기쁜 휴일 혼자 쓸쓸하게 보내게 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맘이 되게 따뜻해졌습니다.
다른 분들 밥 먹는 시간에 앞에 나가서 크리스마스 캐럴도 부르고 피아노도 치고, 음식을 나눠줄 땐 그들이 음식을 받으면서 고맙다고 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한마디 하는 것에서 그 자체에 비록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 그 이틀간의 휴일이 어딜 놀러 간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고 멋지게 보내는 것도 아니었지만 제 마음만큼은 뿌듯하고 남부럽지 않게 보냈구나 하는 마음에 감사한 마음과 정말 꼭 봉사의 방법이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⑥ 나를 존중 해주고, 피아노도 가르쳐 주신 호스트 맘 |
교환학생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역할인 호스트 가족을 만난 것은 정말로 좋았습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끝까지 전부 기억에 남는데,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고 행동 하나하나 눈치 보면서 하기 바빠서 불편하기도 하고, 처음엔 호스트 동생이나 언니 오빠 아무도 없어서 심심하기도 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해진 호스트 부모님만으로도 심심할 겨를 없이 보낼 수 있었고 정말 가족이 되었다고 할 만큼 아주 친해졌습니다. 저희 호스트부모님께서는 제가 다섯 번째 교환학생이라서 이전 교환학생들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할 줄 잘 아셔서 처음에 제가 놓치는 부분들을 다 채워주시고 이해해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정말 저를 많이 존중해주셨고 또 호스트 엄마께 어렸을 때 배우다 중간에 관둔 피아노도 다시 배우고 기타도 배우는 것도 시작하면서 또 다른 여가생활도 만들고, 생일 때는 호스트 부모님께서 새 기타도 사주시고 또 피아노를 중간에 관둔 이후로 치지도 못하던 제가 이제는 Solo & Ensemble 에서 피아노도 쳐서 메달도 받는 정도로 피아노 실력을 다시 향상하게 되었습니다.
콰이어에서는 태국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가 노래하고 저는 피아노를 치는 등 솔로를 콰이어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붙어서 스프링 콘서트 모든 관중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스트 부모님 덕분에 피아노 연주를 취미로 삼게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호스트 부모님과 취미들이 비슷한 까닭에 놀러 가고 함께 여행하고 하면서 즐겁게 지내게 되고 또한 호스트 부모님들이 항상 저에게도 다른 기부나 봉사를 통해서 나누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누면서 사는 삶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저희 호스트 부모님께서는 다른 교환학생들 호스트부모님과는 다르게 이것저것 저 모르게 다 해주셨는데 예를 들어 학교 점심값 같은 경우에 보통 교환학생들은 각자 지급하는데 저희 호스트 부모님께서 저 모르게 돈도 다 넣어 주시고 길 가다가 이쁘다고 하면 물건을 가끔 깜짝 선물로 사주시기도 하고 이것저것 사소한 그것까지 전부 챙겨주셨습니다.
그만큼 저도 틈틈이 크리스마스나 mother's day, father's day같은 날, 호스트 부모님께 선물을 드리면서 제 마음으로 조금 더 친밀감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봄 방학 때는 라스베가스로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호스트 맘이 지휘하는 뮤지컬 밴드에서 호스트 아빠는 기타를 치고 저는 피아노를 치면서 함께 뮤지컬 밴드 활동도 하면서 서로 함께 즐겁게 지냈습니다.
대체로 교환학생 출국 전 부모님과 학생들은 미국 음식이 잘 맞을까 걱정하는데 사실 음식 같은 건 제가 안 가리고 잘 먹는 편이며, 서로 취향들이 비슷하기도 하고 요리하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호스트 부모님 덕분에 정말 못 먹어본 음식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릴에 매일 비싼 음식 구워 먹고, 요리 가르쳐 준다는데 저는 먹기만 하고, 가끔 한식이 그립다 싶을 때면 아시아 음식을 좋아하시는 호스트 부모님 덕분에 김치도 인터넷에서 시켜주시고, 아시아 음식도 꽤 먹고 밥솥까지 집에 있는 까닭에 정말 한국 음식 그리울 새도 없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호스트 아빠와 저는 교환학생 끝자락에 아이스크림 투어까지 해가면서 타운에 아이스크림 샵 들을 전부 투어 할 정도로 막판에는 매일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며 졸라대고 함께 다녔습니다.
그렇게 음식 걱정 없이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어렵기만 하고 집안일 할 때도 눈치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나중 되어서는 말하지 않아도 도울 것 돕고 하면서 정말 가족이 되고 호스트 아빠랑은 서로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장난을 쳐서 삐져놓고는 또 금방 아이스크림 먹고 화해할 정도로 진짜 아빠같이 친해졌습니다.
⑦ 작별하는 날, 호스트 엄마와 아빠 모두 우셨다. |
그냥 이분들과 살아가는 게 일상이 되고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를 깊게 맺어가면서 이렇게 가족같이 지내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중 돼서는 한국 갈 때쯤 되니까 가기 싫어서 징징대기도 하고 호스트 엄마 아빠는 여권 태워 버릴 거라고 장난치시기도 하고. 흐흐 결국엔 헤어지는 공항에서는 호스트 엄마아빠 모두 우시고 참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300일의 시간 동안 무엇보다 저를 참 많이 챙겨주셨고 제가 편한 방향대로 할 수 있게 해주시려고 노력하시던 참 좋은 분들을 그렇게 만나서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장난기 많던 호스트 아빠와는 특별히 정말 친해지고 친구처럼 가깝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호스트 부모님과 교회에서 반주를 함께 하기도 하고 다양한 교회 활동들을 함께 했었는데, 사실 제가 한국에서 큼지막한 교회를 다녔기에 이곳에 작은 교회에 적응이 되지 않았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친구들을 사귀면서 작은 교회의 또 다른 장점을 알고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처음 또래 아이들과 Choir를 하면서 알게 되었고, Sunday school을 통해서 크리스마스나 특별 시즌에는 함께 연극을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들이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라서 그러지 않은 십 대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친밀해질 기회가 되었고 정말 또 하나의 가족처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 앞에 서면 많이 떨었고 스스로 주저했던 모습에서 이곳에서 교환학생 10개월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자는 마음에 스스로가 정말 하고 싶은 그것들을 하면서 그렇게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던 미국 땅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서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하나 쌓아갔던 기억들이 지금 한국에서 있는 순간 생각을 하면 할수록 꿈만 같고, 사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미국에 있는 제 방일 것만 같을 정도로 벌써 너무 그립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지 않으셨으면 이렇게 좋게 보내지 못했겠구나 하는 생각들과 하고 싶은 일 들을 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며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면서 정말 지난 10개월의 미국교환학생은 행복하게 재밌었던 시간이었구나 하는 감사한 생각 들 뿐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