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틀을 바꾼 1년, 미국교환학생(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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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환학생 유학생활 이야기] 생각의 틀을 바꾼 1년, 미국교환학생(2)
미국교환학생 컨설턴트 이은수 2014년도 9월학기 미국교환학생 서혜승 그러고 한 학기를 마무리 한 뒤, 성적표에는 저번 성적표에 있던 성적보다는 조금 나은 성적이 찍혀 있었다. 물론 쉬운 수업을 들은 결과물 이기 도 하고, 수학 같은 과목은 어릴 때 배운 것 을 그냥 복습 한 것이니 당연히 몇 과목은 성적이 잘 나와야 했지만,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던 미국역사, 그리고 영어 성적이 잘 나와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치던 테니스를 미국에서도 계속 쳤었고, 그렇게 썩 잘 하지는 않았지만 테니스를 치면서 사귄 친구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테니스 팀 에는 교환학생 친구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독일 친구들 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었고 미국 친구들도 그 독일 친구들을 정말 좋아했었다. 미국에서 미국 친구 다음으로 많이 사귄게 독일 친구들 인데, 가장 친했던 교환학생 친구도 독일에서 온 친구 이었다. 그것을 기회로 한국에 오자마자 독일어를 조금씩 공부 해보려고 친구한테 조언을 구했더니 모르면 바로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몇년 후 다시 만나자던 친구도 있었다. 유럽사람들은 이기적 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이처럼 교환학생 생활로 사귄 친구들 덕분에 그 나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미국 교환학생 생활 중, 평소에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호스트 패밀리와 콜로라도 로 캠핑을 갔다. 미국에 간지 약 1주일 만에 캠핑을 간 것 이다. 나는 텐트에서 자지는 않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닥불을 피우며 캠핑카 에서 잤고, 호스트패밀리와 보냈던 시간 중 콜로라도 캠핑이 가장 마음에 들었을 만큼 기억도 많이 남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살던 서부 지역을 넘어 동부지역을 여행 했고, 동부를 넘어 호스트패밀리와 ‘푸에르토리코’ 라는 섬도 여행했다. 호스트아빠가 태어나고 자랐던 푸에르토리코 라는 섬은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작지만 정말 아름다운 섬 이었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푸에르토리코는 호스트가족이 아니었다면 여행하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 이다. 적도 부근이라 항상 더운 그 곳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더운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맞은 재미있는 경험을 한 장소 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나 같은 교환학생들을 위한 여행사를 이용해 동부와 서부여행을 갔다. 봄방학 때는 동부에 있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그리고 워싱턴을 1주일정도 여행했다. 9살 때 가족여행으로 뉴욕과 워싱턴을 여행했던 적이 있는 나에게 9년만에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다시 찾은 그 곳은 흥미로웠고 새롭게 느껴졌다. 미국 교환학생 신분으로 여행에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 교환학생 친구들을 알게 되는 것도 정말 새로웠고, 그렇게 만난 아이들과 영어를 하며 친해지고 그 친구들이 모두 내 친구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귀국하기 직전 2주동안 갔던 서부여행은, 내가 비록 서부에 살고 있었고 서부여행 코스 중 반은 내가 이미 가봤던 곳 이지만 친구들과 여행하는 것 도 정말 재미 있다고 생각했고, 그 여행을 마지막으로 나는 귀국하기 전 까지 많은 교환학생 친구들을 사귀고 귀국을 했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일도 많았지만, 미국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도 정말 많이 겪었다. 앞에서 말 했듯이 나는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고, 낯가림이 굉장히 심했기 에, 한국학교와 전혀 다른 미국 학교는 나에게 커다란 도전 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전교생이 2000명이 넘는 학생 중 아는 친구 하나도 없이 미국을 갔지만 별 일 없이 1년동안 잘 적응을 했다는 것, 이것은 1년 전 이면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 이다. 나의 호스트 맘 은 내가 미국에 갔을 쯤 임신을 하셨는데 처음에는 괜찮다가 날이 갈수록 주위사람을 정말 힘들게 하셨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 이 아닌 내가 대부분 맡아서 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고, 배가 계속 불러오니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어하셨다. 집안이 지루했던 나는 친구들과 자주 시간을 보냈었고, 내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한 호스트 맘은 나에게 서운하다며 투정을 부리곤 했었다. 친구들과 자주 나갈수록 호스트패밀리는 내가 호스트패밀리를 싫어하는 줄 아셨기 때문에 매일같이 나갈 수도 없었고 뒤늦게 코디네이터가 호스트패밀리를 새로 찾아준다고 하셨지만 이미 귀국까지 1달밖에 남지 않았던 터라 나는 코디네이터의 제안을 거절 했었다. 이런저런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에게 다시 미국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가겠냐고 물으면 나는 다시 가겠다고 할 것 이다. 가서 힘든 점 도 정말 많았지만, 그런 힘든 점 들을 제외한 것 들은 힘듦을 잊게 할 정도로 나에게 특별하고 새로운 경험 이었기 때문이다. 조기귀국을 생각 하던 내가 10개월을 모두 채우고 귀국할 수 있던 이유도 이 때문 이다. 내가 미국에 가지고 있던 편견은 모두 편견일 뿐 이라는 생각으로 사라졌고, 내가 알고 자란 문화와는 다른 문화를 이해 할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 교환학생 신분으로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나에게 생긴 일은 모두 새로웠고, 내가 다시 경험 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더욱 기억에 남았다. 모든 교환학생에게 그렇듯이, 나에게도 미국 학교는 새로웠다. 한국에서 평범한 고등학생 이었던 내가 미국까지 가서 영어를 사용해 친구를 사귀는 것, 한국 학교에서는 상상도 못할 파티, 교복을 입지 않고 학교를 가서 가끔은 친구 차를 타고 놀러 가는 것 그리고 나이에 따라 언니 오빠 라는 호칭을 쓰는 한국과 달리 모두 ‘친구’ 인 미국문화를 10개월 동안 겪었다는 것은 나에게 정말 값졌었고,절대 잊을 수 없을 것 이다. 나는 미국에서 10개월 동안 많은 것 을 배웠고, 앞으로도 그 기억을 잊지 않고 한국에서 열심히 고등학교 생활을 할 것 이다. 평소에 건축가가 꿈이었던 나는 미국 라스베가스 뿐만 아니라 미국 많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많은 건물을 보았고, 건축에 대한 지식이 많지는 않은 나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더불어 건축을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건축학과’에 진학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앞으로 열심히 노력 할 것이다. |